‘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맞습니다. 만화영화 캔디 주제가입니다. 온갖 고난속에서도 웃음을 잃지않는 만화 주인공이지요. 사무실에 들어와 아침 출근길에 나도 모르게 무심코 흥얼거린 노래가 이 노래라는 데 생각이 미치는 순간 슬며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괴로워도 참고 웃으며 살자’는 내용이 어쩌면 요즘 우리네 삶의 속내를 그리 빼닮았는지.살림살이가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팍팍해지기만 합니다.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 이태백 등의 비유로 샐러리맨을 옥죄는 퇴출 스트레스, 민생엔 관심없고 세력다툼에만 열 올리는 한심한 정치판, 아이 혼자 아파트 놀이터에 내보내기조차 겁나는 흉흉한 세태, 쥐꼬리 월급에 늘어만 가는 카드빚, 각종 고지서 등 높아만 가는 돈달라는 소리…. 대부분의 사람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져갑니다.
하지만 새 봄입니다. 모두 잠시만 짬을 내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그야말로 배꼽을 잡고 웃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주변사람을 배꼽이 빠지도록 웃게 만들어준 적은 언제였나. 그러다보면 이 헛헛한 세상을 견디는 힘은 결국은 사람간의 벽을 허무는 웃음, 그리고 그 웃음의 원천인 유머와 위트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입니다. 유머가 없는 인간은 영혼이 없다고 했던가요?
삶이 각박할수록 웃을 수 있는 여유, 혹은 유머감각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웃음과 유머, 그 달콤쌉싸름한 삶의 활력소가 지금 속삭이고 있습니다. ‘웃어요, 웃어봐요, 그런게 인생이예요.’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사진= 류효진 기자 jsknight@hk.co.kr
■인터넷 웃음바다 만든 부천 '풍림문구' 장은석씨
“지난 한달간 밥 한끼 겨우 먹고 살았어요. 문구점은 코딱지만 한데 신문엔 대문짝으로 났으니… 어휴, 이상하고 어리둥절하죠 뭐.”
부천의 한 문구점 주인이 전국적 스타로 떴다. 4평 남짓한 허름한 문구점인데도 하루 평균 방문하는 ‘관광객’들만 200여명. 방학은 보통 문구점들에겐 개장휴업 기간이나 마찬가지지만 이 문구점은 이번 겨울방학 매상이 3배로 뛰었다. 각종 언론매체에 소개되면서 헤어진 지 13년이 넘은 친지와도 연락이 닿았다.
경기 부천시 소사고등학교 앞에 위치한 풍림문구 주인 장은석씨. ‘학업 스트레스가 많은 학생들을 웃겨주고 싶었다’ 는 소박한 생각에서 나온 기발한 상품으로 전국 네티즌의 배꼽을 잡아뺀 주인공이다.
도대체 두루말이 휴지를 잘라서 한 뭉치에 100원씩 팔 생각이 어디서 난 것일까. 더구나 설사환자용은 200원이란다. 100원짜리와 길이는 똑같지만 가운데 비닐장갑이 한 장 끼워져있다나. 천장에 줄을 대 매달아놓은 외상장부는 더 웃긴다. 할리우드 유명배우의 얼굴 사진을 큼직하게 붙여놓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이름 밑에 ‘내일이면 빚가프리오’라고 써놨다.
어른들 눈에는 영락없는 불량식품인 쥐포구이 양념통에는 ‘문구점 주인 장인어른이 장인정신으로 개발한 신비의 99가지 양념’이라는 설명이 천연덕스럽게 붙어있다. 기업이념도 있다. ‘풍림기술로 세계 최고의 쥐포구이를 만들자’. 만두찜통 문짝에는 만두포장 기준이 붙었다. ‘만두 3개- 손바닥, 5개- 신문지, 10개 이상- 비닐봉투’. 오십줄을 바라보는 남자, 맞어?
“학생들하고 재미있게 지내려면 수준을 맞춰야 해요. 눈높이 철학이랄까요.”
장씨가 문구점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중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한 아버지가 소일거리 삼아 시작한 문구점을 ‘눈이 침침해서 못하겠다’는 이유로 2001년 덜컥 장씨에게 맡긴 것이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현대자동차에 몸담았다가 독립, 10여년간 방재시설 설비업을 하던 장씨도 마지못한 척 물려받았다. 부침은 있어도 어엿한 사업가였던 남편이 문구점 주인으로 전락하는 것을 아내는 결사 반대했지만 장씨 생각은 달랐다.
“설비업하면서 사기꾼들 참 많이 만나고 사기도 많이 당했어요. 신물이 나던 차에 ‘문구점을 하면 먹고는 살겠지’ 싶은데다 상대가 다 순수한 학생들이잖아요. 해맑은 얼굴들 보면서 아이들에게 뭔가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재미가 있는 문구점을 만들기 위해 개업초부터 장씨는 일주일에 한가지씩 아이디어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동네 아이들 밀린 일기숙제를 혼자서 다 써줄 정도로 상상력이 풍부했지만 매주 하나씩 기발한 아이디어상품을 내놓는다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아이디어 개발을 위해 장씨는 정기구독하는 3개의 일간지와 옆 가게에서 보는 스포츠지 등 6개의 신문을 매일 정독한다. 브리태니커와 학원사에서 나온 백과사전을 하루 한권씩 꼬박 읽는 것도 아이디어 개발을 위해 빼놓지않는 일. 출퇴근길 전철이나 버스안에서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핀다. 최근엔 한일간 독도우표 분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쥐포구이 양념으로 ‘독도벌꿀’을 내놨다. ‘독도는 우리땅, 독도꿀은 우리꿀’이라는 설명이 붙었음은 물론(이 꿀은 제일제당 등에서 나오는 양조 유당이다).
풍림문구 폭소탄, 휠리스. 저게 정말로 굴러갈 수 있을지는 주인 장씨도 모른다지만 아이디어는 끝내준다.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것도 필수다. ‘문 워크가 저절로 된다’는 ‘마이클 잭슨 구두’는 춤꾼이 되고픈 한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개발했다. 하루 평균 50개가 나가는 풍림의 스테디셀러 두루말이 휴지는 200원짜리 일회용 포장화장지가 비싸다는 학생들의 푸념이 단서가 됐다.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라고는 해도 “아저씨, 이거 얼마야”라거나 “싫어, 아저씨 사기꾼이잖아”라며 무심히 반말을 해대는 철부지들 탓에 가끔은 속이 상하지않았을까. “글쎄요,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냥 친구 같은 걸요. 이 나이 되니까 항상 웃고 즐겁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돼요. 유머러스함과 성실함, 그걸로 사는거죠.”
굳이 ‘그 비상한 머리를 왜 이런데 쓰느냐’는 친구들의 비난 때문이 아니라도 올해부터는 문구점을 접을 생각이었다는 장씨. 그러나 갑작스런 스포트라이트는 재미난 문구점 아저씨로서의 삶을 좀 더 연장하게 만들 것 같다고 한다. 마침 한 소년이 문구점에 들어서더니 주머니에서 사각형으로 꼬깃꼬깃 접힌 천원짜리를 내밀며 “에덴동산(500원짜리 쥐포구이) 주세요” 했다. “오호, 그거 비싼건데?”하는 장씨의 눈꼬리가 장난스럽게 셀쭉 올라갔다. 덩치 큰 소년이 웃고있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유머,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나
유머는 시대를 탄다. 유머에도 세대차이가 존재한다. ‘최불암 시리즈’ ‘참새 시리즈’ 등 짧으면서 위트와 반전이 있는 촌철살인 유머가 현재 40대들이 공감하고 좋아하는 유머. 하지만 지금 20~30대에게 이런 이런 유머는 그저 썰렁할 뿐이다. 그들에겐 개인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꽁트에 가까운 긴 글들이 유머로 통한다. 반면 40대 이상은 이런 글을 끝까지 읽을 여유도 없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무료정보지에서 읽은 유머로 동료들을 웃겨주려고 작심했다고?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자. 시중에 유포되는 유머의 40%는 1990년대 후반에 나온 유머의 리바이벌. 유머도 유행처럼 돌고 돌면서 확대 재생산된다. 생활의 활력소이자 위트 넘치는 사회풍자이면서 몽상가의 마스터베이션으로 불리는 유머, 그 생산과 소비의 사회학을 공부해보자.
유머, 뫼비우스의 띠
인터넷 유머사이트 중 최장수하고 있는 미소메일(www.misomail.comㆍ1995년 설립)의 기획실장 양성민씨는 유머를 일종의 ‘집단 창작물’로 규정한다. 누군가 뼈대를 만들면 구전을 통해서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건 수시로 첨삭을 거치면서 원석에서 보석을 깍듯이 세공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머의 생산과 소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이 없다’.
작가를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집단창작에 관여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20~30대 직장인으로, 매스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많고 사회동향에 대해 민감한 사람들로 추정된다. 한번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진 유머는 이런저런 사람들의 각색과 퍼오기를 통해 수개월이 지난 뒤 같은 사이트에 ‘퍼온 글’ 꼬리표가 붙어 다시 올려지기도 한다.
“경험의 폭이 어느 정도 돼야 유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십대들이 참가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고 봐요. 또 40대만 해도 유머를 즐기기는 해도 각색은 못해요. 유머를 만드는 사람은 웃긴 것을 자신이 보고 즐기는데서 그치는게 아니라 남에게도 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거든요. 이런 사람들은 알리는 과정에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더 재미있게, 더 날카롭게 각색을 해요. 그런 사람을 한 둘 거치면 유머는 처음 글하고는 완전히 달라지죠.”
유머, 인터넷으로 날개 달다
1990년대만 해도 유머는 주로 입소문으로 유통됐다. 누군가 재미있는 유머를 말하면 즉석에서 손바닥이나 수첩에 적거나, 암기한 유머를 더듬더듬 말하다 기억이 끊겨 망신을 당하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유머의 전파수단은 크게 바뀌었다.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 유머사이트 중 최고 조회수(하루 550만회)를 자랑하는 웃긴대학(www.humoruniv.com) 이정민 대표는 “90년대까지는 유머집 출판이 큰돈은 안돼도 적자는 안봤는데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유머가 무한대로 전파돼 출판은 거의 올스톱 상태”라고 말한다.
인터넷이 중심 무대가 되면서 서서히 유머를 향유하는 방식도 변화했다. “전에는 여럿이 돌려보는 재미를 찾았다면 요즘은 혼자서 즐기는 시대가 된 거예요. 좀 서글프죠.”
불경기는 유머를 낳는다
“경기가 나쁠수록 유통되는 유머의 양은 증가해요.” 이정민 대표는 웃긴대학의 일일 방문객이 지난해 1월 하루 5만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11월말에는 17만명으로, 올들어선 35만명으로 1년만에 무려 7배가 늘었다고 말한다.
방문객 수만 증가한 게 아니다. 하루면 보통 50개에서 많으면 100개 까지 올라오는 창작유머도 3배 가까이 늘었다. “요즘은 보통 200개까지 창작유머가 올라오는데 그만큼 웃기는 공상을 통해 현실도피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불경기뿐 아니라 정치ㆍ사회적으로 불안정할 때도 유머는 폭증한다. 특히 대통령선거나 총선이 있을 때, 사회 전체를 놀라게한 엽기적인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할 때 유머는 제 세상을 만난다.
유머에도 트렌드가 있다
90년대 한창 인기였던 썰렁개그, 허무개그는 이제 그만. 2000년대 들어 유머는 패러다임을 바꿨다. 40대의 눈에는 유머라기보다 꽁트에 가까운 것이 20,30대의 배꼽을 뺀다. 30대 후반 이후의 사람들이 짧고 위트가 있는 촌철살인 유머에 익숙하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생활속에서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이야기들을 약간씩 비틀어서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을 유머로 친다.
웃긴대학의 최고 유머꾼으로 손꼽히는 이동순(25ㆍID lovepool)씨는 대학때 짝사랑한 여학생과 나눈 재미있는 사연을 연작유머로 올리는데 한 편당 길이가 200자 원고지 7,8장에 이른다. 90년대의 유머가 사회적인 공감대가 컸다면 2000년대의 유머는 개인적 체험을 우선시한다는 데서 유머실명제도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95년도에도 푸하유머라는 사이트에서 저작권을 도입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유머란 그저 우스개로 한번 웃자로 하는 일인데 저작권이라니, 바로 문을 닫았지요. 지금도 형편은 비슷해요. 다만 창작유머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서히 출처를 밝혀야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어서 앞으로는 시장이 좀 바뀔 가능성은 있어요.”
유 실장은 그러나 “실명제를 도입하려면 유머작가가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군으로 인정받아야하는 데 아직까지는 취미수준이라는 점에서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희기자
■웃음에 대해 물어보자~
서양속담에 ‘웃음은 내면의 조깅’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웃음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뜻이다. ‘웃음은 최고의 마케팅’이라는 말도 있다. 웃는 얼굴이 사회생활에서 얼마나 유용한지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6세 어린이는 하루 평균 300번을 웃는다고 한다. 정상적인 성인은 17번 내외를 웃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은 하루에 몇 번 웃을까. 본지와 결혼정보업체 ㈜좋은만남선우가 ‘이태백’과 ‘삼팔선’의 고비를 넘고있는 대한민국 젊은 직장인들의 웃음 현주소를 조사했다.
우리 나라 직장인은 하루 평균 11회 웃으며 개인적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웃는 횟수가 6회 이하라는 응답자가 전체의 48.6%에 달해 대체로 무표정하게 하루를 보내는 직장인이 태반인 셈.
지역별로는 지방(10.2회)보다 서울(11.5회) 직장인이, 남성(10.2회)보다 여성(11.6회)이 하루 1회 꼴로 더 웃었다. 학력별로는 대졸(11.3회)이 가장 높은 반면 대학원졸(5.5회)은 고졸(9.1회)에 비해 웃는 횟수가 절반에 불과했다. 직업별로는 기술/엔지니어직(13.4회)직이 가장 많이 웃고 관리직(9.3회)이 가장 덜 웃었다.
지난 한달간 ‘배꼽을 잡고 웃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의 62.2%가 ‘있다’고 대답한 반면 ‘없다’는 사람도 37.8%에 달했다. 이들에게 ‘가장 최근 배꼽을 잡고 웃었던 것이 언제냐’는 질문을 던진 결과 ‘1년 이상 됐다’는 응답도 11.5%에 달했다. ‘없다’는 응답자의 성별 구성은 남성(44.4%)이 여성(31.1%)에 비해 높아 남성이 웃음에 더 인색한 것으로 분석됐다.
배꼽을 잡고 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TV드라마나 개그 프로 시청때’가 21.9%로 가장 컸다. 그 다음으로는 친구와 함께 할 때(13.4%), 자녀의 재롱(7.0%), 배우자와 함께 있을 때(5.5%), 직장동료와의 농담자리(5.0%) 등으로 나타나 가족이나 친구와의 원만한 관계도 웃음의 원동력임을 보여줬다.
● 조사설계
1. 대상: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20~30대 직장인
2. 표본추출방법 및 표본수: 무작위표집 323명
3. 조사방법: 전화여론조사
4. 조사기간: 2004년 2월 11~12일
배꼽을 잡고 웃어본 경험이 없다는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 24.6%가 ‘업무ㆍ상사 등 직장생활과 관련된 스트레스’를 꼽았고 ‘웃을 일이 없어서’라는 응답도 12.3%에 달했다. 그 다음 이유로 남성은 ‘경기 침체’(8.5%)를 꼽은 반면 여성은 ‘집안/가족문제’(7.8%)를 꼽아 남성이 경제적인 문제에 민감한 반면 여성은 인간관계로 인해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웃는 얼굴이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척도질문에서는 응답자의 절대다수인 93.5%가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특히 48.0%는 ‘매우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실제로 웃는 얼굴을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람은 66.3%에 그쳤고 33.4%는 ‘별다른 노력은 하지않는다’고 답해 웃음과 유머가 아직 생활화하지 않은 현실을 반영했다.
/이성희기자
■웃음찾아 인생제기한 제주 김성익씨
“구멍가게 앞만 스쳐도 돈이라니까요, 하하….” 한달 수입 100만원. 24평짜리 아파트는 집값의 절반인 5,000만원이 은행빚이지만 초등학생부터 유치원생까지 세 아이를 둔 가장은 무슨 남모르는 재미라도 있는 양 너털웃음이다. 불과 3년전만 해도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왔다는 자괴감과 뜻대로 되지않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헝클어졌던 사람이 맞는가 싶다.
제주도에서 온라인 여행업을 하는 김성익(40)씨는 불과 3년전으로 기억되는 ‘지옥에서의 한 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웃음이죠. 우리 인생에 기적이 있다면 그건 웃음이예요. 정말 신기한 게 억지로라도 자꾸 웃으니까 생각이 바뀌어요. 생각이 바뀌는 순간, 인생은 이미 달라져 있더라구요.”
지옥- 돈 좀 더 벌어볼 욕심이었다
그의 지옥은 2001년 시작됐다. 지입차주제 형식으로 레미콘 영업을 했던 김씨가 돈 욕심이 난 것이다. 개구장이 아들 둘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않은 막내딸. 큰 돈은 없어도 안정된 수입이 있는 단란한 가정이었지만 김씨는 ‘먹는 장사는 남는다’는 말만 믿고 요식업에 뛰어들었다. 레미콘을 팔고 가족이 세든 전셋집을 담보로 은행융자를 받아 삼계탕 집을 냈다. 처음 몇 달간은 흥이 날 정도로 장사가 잘됐지만 ‘신장개업’의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애초에 식당운영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데도 그땐 왜 그렇게 자신만만했던지…. 아내가 엄청 말렸는데 뭐에 홀린 것 같더라니까요. 막상 판은 벌렸는데 장사는 안되지요, 종업원 월급 주기 힘드니까 집사람이 온종일 주방서 일해야지, 애 셋은 부모없는 애들처럼 방치돼있지…, 정말 미치겠더라구요.”
이틀이 멀다하고 부부싸움이 이어졌다. 사소한 일에도 트집을 잡고 막말이 오가고 아이들 보는 앞에서 식탁 다리를 걷어차며 행패를 부렸다. 온종일 짜증만 내는 아버지를 슬슬 피하는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하는 일도 잦아졌다. 돈 잃고 사랑도 잃고 만신창이가 되서 인생 밑바닥까지 왔다는 느낌, 어디에도 돌파구가 없다는 좌절속에 하루하루 숨이 막혔다.
깨달음- 잇속의 고춧가루 하나
기적은 예고없이 일어났다. 그날도 종일 파리만 날린다고 궁시렁대다 오후 세시쯤 점심식사를 했다. 식후 이를 쑤시는 평소 버릇대로 식당 벽에 걸린 거울을 보면서 잇속의 고춧가루를 빼내느라 한참 씨름중이었다. ‘히히’ 입술을 좌우로 벌려가며 요지를 들이대고 있는데 느닷없이 자신의 얼굴이 눈에 확 들어왔다. 거울속의 얼굴은 활짝 웃고있었다. ‘내가 웃을 상황이 아닌데 왜 웃고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이만 열심히 들여다봤으면 아마 그 얼굴을 못봤겠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 전체 얼굴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그게 웃는 얼굴처럼 보인거예요. 번개를 맞은 것 같더라구요. 그래도 웃는 얼굴 보니까 기분은 좋네 싶어요.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암튼 그때부터 그래 일부러라도 웃어보자,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 웃는 척이라도 하자, 그렇게 된 거예요.”
식당은 여전히 장사가 안되고 은행 대출이자를 못갚아 길거리에 나앉을 판인데 하루에도 몇번씩 웃어제끼는 김씨에게 아내는 “드디어 미쳤냐”며 빈정댔다. “당신 바보 아니냐” 소리도 했다. 하지만 웃음은 전염된다던가. 어느 순간부터 아내도 웃기 시작했다.
슬슬 배짱도 생겼다. 돈 꼭 많이 벌 필요있나 싶었다. 자꾸 찡그리고 화내서 돈이 벌리면 모르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뭣하러 화내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개업한 지 1년여만에 비로소 식당을 정리할 마음이 생겼다. “그전에도 그만두고는 싶었는데 ‘이나마 말아먹으면 어쩌나’ 무서운 거예요. 도저히 엄두를 못냈는데 웃기 시작하면서 두려움이 없어지데요.”
행복- 정신적인 부자로 사는 것
2002년 여름 식당을 접고 김씨는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전에는 ‘하루 두끼 먹는 한이 있어도 못하는’ 일이었지만 이미 인생관이 바뀐 김씨에겐 그것마저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식당을 하면서 헝클어진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뜻도 있었다. 새벽 4시에 신문보급소에 나가 6시반까지 배달을 했다. 아내도 어느덧 같이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열심히 벌어도 다섯식구 살림이라 5,000만원에 이르는 빚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지만 가정엔 비로소 행복한 웃음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정신적인 부자’라고 여긴다. 2003년 2월에는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한 ‘그래도 세상을 향해 크게 웃어라’는 제목의 책도 냈고 소규모 온라인 여행사도 차렸다. 마침 사스 때문에 제주도관광이 활성화하면서 지난해에는 꽤 짭짤하게 재미도 봤다.
김씨 가족의 가훈은 ‘웃고 살자’ 다. 보통 사람들은 좋은 일이 있어야 웃는다고 생각하지만 김씨는 웃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는다. 웃다 보면 긍정적이 되고 생각이 트인다. 아이들을 많이 웃겨주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김씨는 요즘 조류독감 사태로 자살하는 사람들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린다. “저도 한때 삼계탕 집을 해서인지 남의 일 같지않아요. 그런 분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힘들수록 억지로라도 웃으려고 노력하자구요. 웃다보면 세상을 견디는 힘이 생기거든요.”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유머 넘치는 사원이 일도 잘하네
어느날 아침 직장상사가 엘비스 프레슬리 재킷에 징 박힌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다면? 취업 면접자리에서 알고있는 농담중 가장 재미난 것을 말해보라는 주문을 받았다면?
황당한 소리 같지만 실화다.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2위에 오른 사우스웨스트항공의 ‘미국에서 가장 웃기는 경영자’라는 별명을 가진 허브 켈러 회장이 몸소 실천하는 유머경영의 한 예들이다.
실제로 켈러 회장은 신입사원 면접에서 유머를 말해보라고 주문한 뒤 웃기면 합격, 썰렁하면 불합격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황당한 면접관문의 이유는 간단하다. “유머를 갖춘 인재야말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조직을 성공으로 이끈다”는 소신에 따른 것이다.
한때는 개인적인 기질의 일부로 취급됐던 유머러스함이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위한 덕목으로 자리잡았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안홍진 상무는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보다 인간관계가 더 어렵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라면서 “유머러스한 직원들은 직장내에서 다른 사람과 더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더 후한 점수를 받는다”고 말했다.
유머러스함이 직장인들의 중요 덕목이 되면서 인터넷 유머사이트에는 일일 유머배달 서비스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일주일에 2~3회 최신유머 전송서비스를 하는 미소메일(www.misomail.com) 신승래 사장은 “하루 평균 40만명에게 유머를 전송하는데도 메일링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최근엔 아예 신규가입을 받지않는다”고 말한다.
매일 유머전송을 하는 오늘의 유머(www.todayhumor.co.kr) 사이트의 경우 하루 평균 50만명에게 유머를 전송한다. 이 사이트 기획실장은 “유머 메일링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의 회원신청 이유를 들어보면 기본적으로 본인이 즐겁고 유쾌해지기 위한 것도 있지만 남들에게 유머러스하다는 소리를 듣기위해 신청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익살 인테리어·애교 패션 뜬다
도대체 웃을 일이 없다고? 그렇다면 가만 생각해보자. 지난 몇 달간 쇼핑센터에 한번도 안 갔던 것은 아닌가.
‘사회가 불안정하고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유머 유통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어떤 연구결과를 입증하 듯 최근 생활속 유머감각이 빛나는 디자인상품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패션과 인테리어 분야에서도 ‘유머러스’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로 등장했다는 얘기다.
패션- 천사가 될래, 백설공주가 될래
작지만 주목할만한 올 봄 패션계 흐름중의 하나는 ‘유머 디자인’이다. 눈치빠른 사람들이 패션은 ‘TPO(Time, Place and Occasion)’로 대표되는 ‘규범’이기보다 ‘재미’여야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유머는 빠르게 패션인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패션 속옷 브랜드의 전유물인 섹시코미디 수준의 상품은 아닐지라도 웃음을 자아내는 재기발랄한 디자인들은 샤넬이나 토즈 같은 세계적인 명품브랜드부터 키플링 케네스콜 같은 중가 내셔널브랜드에 이르기까지 주요 전략품목으로 개발되고 있다.
수입 가방브랜드인 키플링은 올 봄부터 라이센스로 출시하는 캐주얼의류 부문 티저아이템으로 천사티셔츠를 내놨다. 하얀색 면티셔츠 등판에 길이 15㎝짜리 비닐소재의 천사날개를 붙인 것이다.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개발 당시 찬반이 극렬하게 갈렸다. 영업부쪽에서는 “날개를 달면 제품단가가 올라가는데다 걸리적거리기까지 해 소비자 반응이 나쁠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기획부는 “재미와 유머러스를 컨셉으로 잡은 키플링의 이미지를 가장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상품”이라고 밀어붙여 마침내 햇빛을 봤다.
천사티셔츠 외에도 키플링은 치마 뒷부분에 동그랗게 구멍을 뚫은 디자인도 선보였다. 앞모습은 단순한 A라인 무릎길이 치마였다가 뒤로 돌아서는 순간 보이는 커다란 구멍이 호기심과 재미를 선사한다.
샤넬은 올해 유머 디자인을 가장 많이 선보인 브랜드다. 무당벌레가 발가락 사이로 돌아다니는 듯한 착시효과를 주는 스트랩 샌들, 선명한 녹색과 빨강색의 대비효과는 물론 난쟁이와 매미, 꽃을 장식해 백설공주 이야기를 흐뭇하게 연상시키는 가방, 카세트테이프와 LP판이 주렁주렁 매달린 목걸이, 영락없는 카세트테이프인데 실제로는 가방인 45rpm핸드백 등이 쏟아져나왔다. 명품이지만 엄숙하지 않고 가볍고 즐거운 이미지를 담은 것이 특징이다.
3월 현대백화점 본점에 첫 매장을 내는 이탈리아 브랜드 토즈는 올 봄 하이라이트 상품으로 ‘캔디’ 가방을 준비하고 있다. 가방 양쪽 끝에 조여지는 장식이 붙어있어 마치 사탕포장 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 특색이다.
이밖에도 케네스 콜은 독특하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신세대 남성들을 위해 옷핀 모양과 주판 모양의 커프스 링을 내놨으며 블루걸은 만화캐릭터를 오버롤즈에 다양하게 채용해 눈길을 끌고있다.
어깨 힘 뺀 인테리어도 유머 바람
증권 회사에 근무하는 회사원 김양길(29)씨는 요즘 근무시간에 미소 짓는 일이 많아졌다. 밸런타인 데이 선물로 여자친구가 사준 철제 티슈박스 때문이다. 대충 널브러져 있던 티슈 통을 감싸고 있는 은색 사각 상자에는 익살스러운 얼굴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티슈는 활짝 웃는 입을 통해 뽑아 쓴다.
“지나가던 동료들이 신기하다며 한두 장씩 빼가는 통에 티슈 소비량이 두 배로 늘었어요. 조금 억울하지만 촌스러운 종이상자에 비하면 기분을 한층 상쾌하게 합니다. 일이 힘들 때 저 녀석을 보면 ‘나처럼 웃어봐’라고 말하는 것 같다니까요.”
이 제품은 기발하고 익살스런 디자인으로 유명한 독일 호그리(Hogri)사에서 나온 것. 김씨는 다음 주 있을 초등학교 동창의 집들이를 위해 같은 브랜드에서 나온 포크 세트를 주문했다. 역시 어린아이가 활짝 웃는 듯한 얼굴이 새겨진, 재미있는 디자인이다.
중후한 앤틱 스타일과 로맨틱한 쉐비 시크(Shabby Chicㆍ낭만적인 유럽 시골 집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의 물결 속에서 떠오르는 새 트렌드는 단연 ‘펀(fun) 인테리어’다.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에 작은 활력을 줄 즐겁고 독특한 인테리어 디자인이 소품을 중심으로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사각 CD케이스보다는 열대에서 갓 기어 나온 것 같은 초록 도마뱀 모양의 벽걸이 CD걸이가 ‘즐거움 지수’를 높여준다. 화투 그림이 그려진 소주잔이나, 보일 듯 말 듯 하게 작은 웃는 얼굴이 그려진 젓가락, 욕실 휴지걸이에 올라 앉은 코를 막은 인형 등도 인테리어 소품 매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재미있는 제품이다.
LG데코빌 송미숙 디자이너는 “유머러스한 소품이 각광을 받으면서 덩달아 뜨는 것이 바로 ‘촌티 나는’ 제품”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눈깔사탕 기계, 20원짜리 주황색 공중전화, 1960~70년대 포스터 등 복고 소품은 무거운 앤틱과 또 다른 느낌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유치하고 촌스러운 물건들은 웃음과 편안함을 주죠.”
재미있는 디자인을 가진 제품의 붐을 일으킨 가장 큰 주역은 소형 인터넷 쇼핑몰이다. 젊고 감각있는 디자이너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인테리어 매장은 구경만으로도 즐겁다. 캡슐 모양의 편지지나 동물 모양의 어깨 마사지기 등 각종 히트상품을 일궈낸 곳이기도 하다. 디자이너들이 소규모로 직접 만들거나 해외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를 수입해 판매하는 곳이 대부분으로 ‘텐바이텐(http://10x10.co.kr)’ ‘스토아정글(http://stor.jungle.co.kr)’ 등이 대표적이다.
얼마전 인터넷에는 외로운 밤을 든든하게 지켜줄 남자 가슴팍 모양의 베개가 유행했다. 또한 독일에서는 이혼한 이들이 홀로 밥 먹는 시간을 지켜줄 ‘가짜 밥 친구’ 포스터가 출시돼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자신의 공간을 취향대로 마음껏 꾸미며 사는 싱글족의 증가는 재미있는 인테리어 디자인의 인기에 가속도를 붙게 한다.
패션ㆍ인테리어 통신판매 업체 두산오토(www.otto.co.kr) 박경화MD는 “개성 있는 싱글족이 느는 한 인테리어 소품의 디자인은 나날이 재미있어질 것”이라며 “이 같은 제품들은 통통 튀는 모양 뿐 아니라 좁은 공간에 필요한 기발한 기능과 실용성까지 겸비해 더욱 인기”라고 말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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