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12일 서태지 7집에 실린 'Victim'에 대한 재심의에서 방송불가 방침을 재확인한데 이어 MBC와 SBS 역시 18일 재심의에서 방송불가 판정을 내렸다. 방송 심의의 형평성 문제를 들어 반발해온 서태지 측과 시민단체들은 'Victim'의 심의 통과 촉구에서 한 발 나아가 심의제도의 전반적인 개선운동을 펼칠 예정이어서 방송 심의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방송 3사는 "문제로 지적된 노랫말을 단 한 자도 바꾸지 않은 채 재심의를 신청한 것은 우리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라는 것 아니냐"며 재고의 여지가 없음을 밝혔다. 3사는 'Victim'에서 '퍼런 가위에 처참히 찢겨 버린 테러리즘에 지워진 아이야'라는 부분이 낙태 장면을, '넥타이에 목 졸린 채 구토를 하는 너'라는 부분이 살인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Sexual Assault' 'Fucked Up'등 용어를 사용한 점을 문제 삼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방송제도 개선 모임인 'Victim'과 서태지의 팬들은 "유린당하는 여성 인권과 낙태의 문제점을 지적한 전체적 주제는 간과한 채 단어 하나하나에 심의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일차원적이고 방어적인 심의 행태"라고 비난해왔다.
하지만 방송사의 입장은 다르다. MBC 심의부 안혜란 차장은 "노래 전체의 의미는 이해하지만 표현이 지나치게 과한 점을 문제 삼은 것"이라며 "역시 낙태 문제를 다룬 'MC 스나이퍼'의 '49제 진혼곡'은 방송사의 심의를 통과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심의의 형평성을 둘러싼 논란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각 방송사는 방송위원회가 정한 방송심의 규정에 준해 자체적으로 가요심의규정을 정하고 있으며 라디오PD 등 5∼10명의 사내 인사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통해 방송 여부를 결정한다. 때문에 심의가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자우림의 '일탈'은 KBS에서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이라는 부분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샾의 '어느날'은 노랫말 중 '니가'라는 단어가 흑인을 비하하는 말인 '니거(nigger)'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MBC로부터 방송 불가 판정을 받은 바 있다. 반면 NRG의 'Hits Song'은 '아싸 야한 밤의 사건… 너의 숨결 미끄러져 가는 너의 살결'이라는 선정적인 가사에도 불구하고 통과됐다.
시민단체들은 방송사의 사내 인사 위주로 이뤄지는 심의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각 방송사는 "우리 회사에 어울리지 않는 곡을 선별하기 위해 사내 인사가 심의를 담당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 하지만 문화사회연구소 이동연 소장은 "사내 인사가 심의를 전담하는 것은 전파를 사유재산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며 "시청자의 입장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사외 인사로 구성된 심의위원단이 심의를 담당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밝혔다. 문화연대 등 문화시민단체는 이번 일을 계기로 조만간 토론회를 여는 등 심의제도 개선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일 예정이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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