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건설업체인 영조주택 윤호원(47) 회장 겸 대표이사는 국내 건설업계 최고경영자(CEO) 중에서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경남 합천 출신인 윤 회장의 전직업은 대검찰청 중수부 수사관. 정·관계의 주요 인사 등 굵직한 강력사건을 다루는 중수부 수사관이 건설사 창업 6년 만에 연간 4,000억원대의 매출과 5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 건설업체를 이끄는 놀라운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소작농인 선친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윤 회장은 넉넉지 않은 청소년기를 보냈다. 1976년 거창 대성고를 졸업한 윤 회장은 집안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9급 공무원 행정직 시험에 도전해 합격, 거창 우체국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 1년간의 공직생활을 접고 군대(육군 영천 공병대)에 들어간 윤 회장은 81년 제대를 하면서 공무원 복귀를 포기하고 사업에 뛰어 들었다. 당시 사업은 자본금 500만원을 갖고 시작한 부산역 앞 간이 식당. 그러나 경험이 부족한 탓에 식당은 1년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막연하게 의지만 갖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하면서 '사회가 만만치 않구나'는 것을 처음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여기는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했습니다"
첫 사업 실패 후 윤 회장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검찰 공무원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이듬해 윤 회장은 4월 치른 검찰직 9급 시험에서 5,000여명의 응시자 중 당당히 수석으로 합격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3개월 뒤에 실시한 검찰직 7급 공무원 시험에서도 최종 20명을 뽑는 합격자 명단에 드는 잇단 경사를 맛봤다.
이후 윤 회장은 84년부터 서울지검, 의정부지청, 북부지청 수사과를 거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관으로 재직했다. 중수부 수사관 재직시절 윤 회장에게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88년 무렵 대검에서 직장 조합 아파트 붐이 불었는데 우연찮게 직장 조합장을 맡게 된 것이다.
윤 회장은 조합 일을 관여하면서 동료들에게 집장만 해주는 일을 도맡아 했고, 그러면서 윤 회장에게는 하나의 목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주택사업에 직접 뛰어들어 꿈을 펼쳐 보겠다는 것이었다.
한번의 실패 경험이 있던 윤 회장은 이때부터 회사설립 자금 준비에서부터 조직관리, 주택사업 동향 파악 등 치밀한 사전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남들은 못 가서 안달인 대검 중수부를 왜 그만 두려고 하느냐"는 가족과 친치 등 주변의 강력한 반대에 밀려 창업을 1년 미뤘다. 이듬해인 93년 윤 회장은 주택사업에는 법률과 행정적인 노하우가 필수요건이라는 판단을 하고 건설사 창업에 앞서 우선 법무사 사무실을 열었다.
윤 회장은 주변의 만류를 차단하기 위해 아예 사무실 마련과 직원 채용까지 다 끝낸 뒤 사표를 제출했다. 건설업 진출에 앞서 노하우를 파악하기 위해 한 법무사일은 의외로 잘돼 사무실은 매출면에서 전국 3위권 내에 들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당시 제 법무사 사무실을 두고 주변에서 '건설업체의 일은 모두 다 가져간다'는 시샘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진짜 야망은 법무사가 아니라 주택건설 사업에 있었습니다. 법무사 일을 하면서 저는 돈을 주고도 못 얻는 건설 업의 노하우를 모두 터득하는 값진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성공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법무사 일이 본궤도에 한창 오를 무렵인 98년 윤 회장은 당초 계획에 따라 사무실을 접고 창용건설을 인수, 꿈에 그리던 주택사업에 진출했다. 윤 회장은 주택 사업 초기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창업 6개월 만에 삼성건설, LG건설 등 '골리앗'을 제치고 2,500억원 규모의 분당 백궁역 부지 사업을 수주하는 개가를 올렸다.
윤 회장이 단기간에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용어조차 생소했던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라는 신금융 기법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금융권에 사업 계획을 설명해 투자를 유치하고, 이 자금으로 사업을 성공시키는 기법을 멋지게 성공시켰다. 윤 회장은 99년 현 종합건설업체인 영조주택을 설립해 사세를 키웠다. 이어 종합건설사인 전풍건설과 (주)영조, 시행사인 공진주택 등을 잇달아 인수·창업했다.
"저의 꿈은 죽어 있는 국내 주택문화를 살아 있는 주택문화로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아파트는 유사한 경력의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지만 주택이 단순 주거 기능에 머물면서 인적 커뮤니티 형성이 안된 닫힌 구조로 남았습니다. 앞으로 영조주택이 이런 닫힌 주거 문화를 '커뮤니티가 형성된 네트워크형 열린 주거 문화'로 바꾸는 작업에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윤 회장은 이웃이 함께하는 살아있는 주거 문화 창출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평생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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