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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변신과 표변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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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변신과 표변의 계절

입력
2004.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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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돈이 바닥나기 시작했던 1997년 초봄의 일이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정권은 임기를 1년정도 남겨놓았지만 쉴새없이 터져나온 핏줄과 측근의 비리로 이미 맥이 빠진 상태였다.당시 YS는 위기돌파용 카드로 장관과 차관을 일부 바꿨다. 차관인사가 단행된 날 저녁, 한국일보에는 뜻밖의 어떤 전화가 걸려왔다. "저는 출신이 전북쪽이 아니예요. 고등학교도 경기고를 나왔는데…. 서울로 해주세요." 경제부처에 발탁된 한 인사는 다짜고짜 이렇게 주문했다. 그가 평소 '서울 출신'이라고 누누이 강조해온 점은 알고 있었지만 영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그래도 그의 소원을 받아들여 초판신문에 보도된 '출신-전북 전주'를 시내판에서는 '서울'로 바꿨다.

그는 DJ(김대중 전 대통령)정권 들어서도 또 정권의 부름을 받는다. DJ정권 출범과 함께 한 요직을 맡았는데 프로필에서 '서울 출신'은 쏙 빠졌다. 해당 정부부처에서 '전북 출신'이라고 자료를 냈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줬다. 변신에 능한 처세술의 대가였을까. 그는 최근 개각에서 또 한 자리에 발탁됐다. 3개 정권에 걸쳐 요직을 맡은 셈이다. 그리고 상당수 신문에 실린 프로필에는 '전북 전주'가 선명하게 인쇄됐다.

그에 못지 않은 변신의 귀재들은 관가에서도 종종 목격된다. 최근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한 전직 장관의 지나온 행보도 흥미롭다. 그는 경제부처의 고위직 시절 유명인사였다. 관료이면서도 수완이 능한 '상인'처럼 자신을 홍보하고 정책을 마케팅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줘 특별한 별명이 붙어 다녔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 공을 세웠지만, 평가는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곤 했다. 그는 장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떠나더니 대학교수가 됐다. 그후 3년여를 유명대에서 봉직했지만, 주변 인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재입각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러나 재입각하진 못했고 이번에 정치권 진입을 택했다.

두 사람은 지나온 족적의 성격은 좀 다르지만, 1990년대 중반과 후반 이름을 날렸던 정통경제관료 출신으로 자주 변신했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변신은 넓은 의미로 보면 종류가 여러가지다. 변심과 배신 외에 변절, 표변도 그 일종이다. 정권을 이어가며 한 사람은 변신에 잇따라 성공했다. 반면 한 사람은 성공적인 변신에 이어 정치권에 들어왔지만 그 결과는 아직 미지수다.

변신의 계절이다. 또 선거가 다가오면서 하이에나가 먹이를 쫓듯 청와대, 관가, 재계, 언론계에서 단숨에 정치인으로 옷을 갈아입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이들이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색깔을 바꾼 과정과 성질도 각양각색이다. 그중에는 물론 이해할 만하고 그럴듯한 변신도 있지만 배신과 표변도 적지 않아 보인다.

정치라는 행위의 특성상 이제까지는 금배지를 달기 위한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라고 인정하자. 그러나 이들이 이제부터 어떤 변신을 해갈지는 꼭 주목해 볼 일이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앞으로는 일편단심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공직자들이 첫발을 내디딜 때 한번쯤 외쳤을 법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식의 마음가짐을 요구하는 것은 더욱 공자님 말씀이다. 다만 "민심 얻어 배지 달겠다"는 이기적인 다짐마저 표변하는 건 모두에게 불행이다. '민심얻기'는 변신의 대상이 아니라 모두 생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김 동 영 사회2부장 dy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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