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 게이오대(慶應大)에서의 연수를 위해 도쿄에 머물 때 일이다. 일본생활 시작한 지 겨우 두 달. 쇼핑센터에서 물건 값을 계산하고 돌아서다 뒤에 바짝 붙어있던 유모차 바퀴를 발로 가볍게 찼다.잘잘못을 떠나 얼른 서투른 발음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유모차를 끌고 있던, 땅딸막한 체구에 머리를 짧게 깎고 목에는 굵은 금속 목걸이를 한, 한눈에 동네 건달 같은 사내는 퉁명스럽게 "아기가 타고 있는데 조심 않고"라고 반말로 쏘아붙였다. 몇 번 "미안하다"고 했지만 계속 화를 냈다. 그의 태도에는, 말투와 외모로 봐 틀림없이 한국인 아니면 중국인인 상대에 대한 멸시의 태도가 깔려있었다. 그것은 그가 자리를 뜨면서 마지막으로 던진 말에서 곧바로 증명됐다. "바카(馬鹿)."
피가 거꾸로 솟았다. 바카라니. 바카야로란 소리 아닌가. 일본에서는 아이들이 흔히 쓰는 가벼운 욕이지만, 우리 역사속에서 그 말은 일본인들이 우리민족을 멸시하는 지독한 욕이었다. 일제 36년이 떠올랐다. 한국말로,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큰소리로 했다. 한쪽은 일본말, 한쪽은 한국말로 싸우는 웃지 못할 광경. 결국 서슬에 놀란 건달이 먼저 화해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우리의 일본에 대한 감정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아무리 월드컵을 함께 열고, 대중문화를 개방해도 일본에 관한 한 우리 국민의 대응은 감정적이다. 특히 과거에 관해서는. 일본 영화와 가요를 즐겨 보고, 듣는 세대까지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한다. 그러니 일제강점기에 끔찍한 피해와 상처를 직접 가진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이승연의 '군위안부 누드 사건'도비슷하다. 요즘 풍토로 보면 그 정도 노출은 누드랄 것도 없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희롱했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가 자신의 정치적인 인기를 위한 것처럼, 그녀의 어설픈 역사의 재연은 돈과 인기를 위한 얄팍한 상술에 불과했다. 그녀의 모습이 아무리 처연할지라도 옷 매무새가 흐트러진 사진은 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아직도 아물지 않는 60여년 전의 악몽과 상처에 뿌려대는 소금이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울부짖는다. "피눈물 흘리는 걸 어느 누가 알아"라고.
여론의 비난 화살에 겁먹은 이승연이 할머니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것을 '참회'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와, 반성이 아닌 다분히 불만의 표시로 삭발을 한 영상집 사업자인 네띠앙엔터테인먼트 측이 할머니들의 용서의 최소 조건인 '사진과 동영상 즉각 폐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폐기는커녕 뻔뻔스런 네띠앙은 18일 "문화식민지로 전락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라며 "공개시사회를 열어 정당한 판정을 받고 싶다"는 어이 없는 제안까지 했다.
그래 놓고 용서해 달라니. 처음 기자회견 때 진품이라면 3,000만원이 넘는 명품가방을 들고 나타나서는 '영상집'으로 돈 벌면 군 위안부 할머니들 사업에 쓰겠다고 태연하게 말했던 그녀의 눈물을 누가 믿을까. 6년 전에도 이승연은 운전면허 부정 발급으로 지금과 비슷한 모습으로 '반성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5개월 후)에 그녀는 방송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의 눈물에 속지 말자. 그 눈물은 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른 눈물과는 다르다. 그녀는 연기자다. 우리가 일본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것도 과거 역사에 대한 진정한 그들의 참회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대현 문화부장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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