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칠레산 포도가 물밀 듯 밀려오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콱 막힙니다."17일 오전 포도 비닐하우스에서 포도나무 껍질 벗기기 작업을 하던 안대희(55·충북 옥천군 옥천읍 가풍리)씨는 "가뜩이나 기름값과 인건비까지 올랐는데 어떻게 버텨야 할 지 모르겠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15년째 시설 포도를 재배하고 있는 그는 "45%의 관세를 물고 수입되는 현 칠레산 포도도 국산에 비해 그리 비싼 편이 아닌데 관세마저 허물어지면 시장을 통째로 내줘야 할 지도 모른다"며 "우리가 과연 경쟁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포도 주산지인 충북 옥천, 영동 지역 포도 농가들은 FTA가 현실로 다가오자 초비상이 걸렸다. FTA 비준안 통과로 당장 2,3개월 뒤에는 농산물 중 포도가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특히 포도 농가중 칠레산과 출하시기가 일부 겹치는 시설 포도(비닐하우스 포도) 재배 농민들은 좌불안석이다.
이 지역의 경우 전체 포도재배 면적의 12%에 해당하는 시설 포도 재배 농가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우려된다. 시설포도의 출하시기는 5,6월. 이 시기에 수입되는 칠레산에 대해서는 관세가 붙지만 정작 시장에 풀리는 포도는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 5월 이전에 수입된 것이어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해 초 칠레 포도 산지를 시찰했던 영동군포도회 오인길(62) 회장은 "이르면 5월말부터 칠레산과 우리 시설 포도가 가격 경쟁을 하게 되는데 한 마디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며 "거대한 포도밭을 전자동 시스템에 의해 재배, 수확, 선별, 포장을 해내는 그들과는 경쟁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폐농하는 농가에 보상해주는 근시안적 대안만 내세울게 아니라 국립 포도람도연구소를 설립, 신품종을 개발하고 가공 산업을 육성하는 등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시설 포도 재배 농가들은 오히려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에서 시설 포도(2,000평)와 배(3,000평)을 재배하고 있는 곽동덕(49)씨는 "우리 포도는 품질 면에서 칠레산보다 월등히 뛰어나고 신선도 면에서는 30일 가량 바다를 건너오는 칠레산과는 비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칠레산이 들어오면 우리 농가가 다 죽는다고 하는데 이는 현실을 너무 모르는 호들갑"이라고 일축했다.
충북도 옥천포도시험장 관계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칠레산이 들어왔지만 품질이 떨어지고 우리 입맛에도 안 맞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시설 포도의 출하시기를 조절, 칠레산과 겹치는 기간을 줄이고 당도가 높은 신품종 공급을 크게 늘리면 가격폭락 등 큰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옥천=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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