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나 영화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의 연극 출연이 많아졌다. 배우의 유명세를 통해 흥행을 기대하는 제작자의 욕망과, 영원한 고향과 다름없는 연극무대로 회귀하고자 하는 배우의 욕망이 맞물려 일어나는 현상이겠지만 어쨌든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보던 얼굴을 직접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관객들에겐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내가 참여하는 연극 '에쿠우스'에서 만난 김흥기 선생님은 바쁜 가운데서도 늘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랜만에 하는 연극이어서인지 무척 힘들어 했지만 서둘지 않고 차곡차곡 자신의 역할에 접근해 나갔다.
드디어 공연의 순간, 관객들은 기립박수로써 연극무대로 돌아온 중견배우를 맞았다. 하지만 환희도 잠시, 공연 두번째 날 1회 공연이 끝나자 선생님은 쓰러지셨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다 커튼 콜까지 마치고 분장실로 비틀비틀 돌아와 쓰러진 것이다.
연극배우가 무대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불안과 초조 속에 보내는지 모른다. 날마다 다른 관객의 시선을 받는 일은 늘 새롭고 설레지만 동시에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모순되는 순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존재감 때문에 배우는 무대를 꿈꾸는 게 아닐까.
다음날 밤새 울어 퉁퉁 부은 눈으로 병원을 향했다. 상태가 안 좋아 병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안절부절하는 우리에게 아드님이 말한다. 심려 끼쳐 죄송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 마음 씀씀이에 더 슬퍼졌다.
며칠이 지났다. 다시 연습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는데 금새 또 다시 막이 오른단다.
관객이 박수를 보내준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텅 빈 무대 위에 홀로 서서 생각한다. 나는 왜 여기에 서 있을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길 해 연 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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