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만화로 제작됐다. 일간 신문과 시사 주간지, 인터넷 신문 등의 시사 만화가 모임인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가 터부와 금기로 가득찬 우리 현대사의 쟁점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짚어낸 '만화 대한민국史'(이끌리오, 9,000원)를 냈다. '만화 대한민국史'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가 지난해 출판해 반향을 일으킨 '대한민국史'를 재구성한 것으로, 원작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현대사의 민감한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최초의 만화다.이번에는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비교적 폭 넓게 다룬 1권이 나왔으며 베트남 참전, 군대와 병역문제 등을 다룬 2권은 4월께, 주한미군과 반미문제를 담은 3권은 6월께 추가 발간된다.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실미도 사건은 2권에서 그린다.
'만화 대한민국史' 제1권은 민족문제, 친일파, 대한민국의 법통, 고문과 양민학살, 지식인의 태도, 사학문제, 보수주의 등을 촌철살인의 풍자와 재치, 익살 등 만화의 특성을 충분히 살려 담아내고 있다.
일제 때 진보적 지식인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민족의 힘을 모을 구심점으로 내세운 단군 할아버지가 다른 민족을 차별하는 배타적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변질된 과정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다고 헌법에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를 이끈 김 구, 김규식 등이 초대 정부에서 배제되고 미군정과 친일파 관료가 그대로 기용된 사연도 그렸다.
1987년 일어난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의 주범인 박처원 당시 치안본부 5차장이, 친일 경찰로 독립운동가를 악랄하게 고문하고 반민특위 와해에 앞장 선 노덕술 사단의 막내라는 사실7도 일러준다. 4·3사건과 여순사건, 한국전쟁 등의 와중에서 무고한 양민이 숨진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조선 후기 국가를 뒤흔든 동학교도를 비판하면서도 백성을 폭도로 만든 부패한 관료를 더 철저히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건창을 참된 보수주의자로 내세우고 장준하 함석헌 문익환 계훈제 등이 모두 우익 출신이라는 점을 언급한 뒤 기득권에 연연하고 자기 희생을 모르는 지금 우리 사회의 자칭 보수주의자들과 대비시킨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김지하 시인의 행태도 도마에 올랐다. 1991년 젊은이들이 목숨을 던지며 독재 청산을 갈망할 때 그는 신문에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 치워라'는 글을 실어 그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출판사 측은 "현대사를 다룬 책은 많지만 내용이 어렵거나 복잡해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가 많았다"며 "민감한 현대사를 독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화를 냈다"고 말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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