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월17일 독일 작가 에른스트 윙거가 작고했다. 103세였다. 1895년 생이니 세 해만 더 살았더라면 그 삶의 연대기가 세 세기에 걸쳐 있었을 터였다. 윙거의 기다란 생애는 본능과 의식, 관조와 행동, 도취와 금욕 사이에서 분열돼 있었다. 그의 글쓰기는 때로 현실로부터의 도피이기도 했고 때로 정치적 차원의 강렬한 자기 주장이기도 했다.약국을 운영하는 화학자의 아들로 태어난 윙거는 성장기를 책에 파묻혀 상상력 속에서 보내다가 17세에 가출해 '사나이들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프랑스 외인부대에 지원해 아프리카에서 화려한 무정부주의적 삶을 경험했고, 아버지가 손을 써 독일로 돌아온 직후에 터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군인병원에서 종전을 맏은 윙거는 '불과 피'(1926)에서 전쟁을 미학적으로 정당화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 데 이어, '대담한 마음'(1929), '총동원'(1931) 등을 통해 나치즘에 접근했다. 그러나 그는 나치당원이었던 적은 없었고, 히틀러의 집권 이후 나치즘에 비판적으로 돌아섰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윙거는 대위 계급장을 달고 파리에 주둔했다. 파리에서 쓴 '정원들과 거리들'(1942)이 즉각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그는 수많은 프랑스인 팬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 시절 윙거의 교제 범위는 프랑스 문화예술계의 거의 전부라고 할 만했다. 콕토, 피카소, 브라크, 셀린, 폴 모랑, 드리외라로셸 등 좌우파 예술가 다수가 그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파리 주둔 독일군 사령부는 윙거의 행적을 주시하면서도 그를 보호했다. 윙거의 작품들은 전쟁 말기에 나치에 의해 판금되었고, 종전 직후에는 영국 점령군에 의해 잠시 판금되었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논쟁은 이내 잠잠해졌고, 그는 일종의 귀족적 개인주의로 수렴할 반 세기 이상의 기다란 내적 망명을 시작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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