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해 일단 우리나라도 전세계로 확산되는 FTA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그러나 이번 비준 과정에서 이해집단의 반발에 휘둘려 비준이 3차례나 무산되는 부정적 선례를 남겨 앞으로 추진할 일본, 싱가포르, 중국, 아세안 등과의 추가 FTA협상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특히 정부가 당초 총 1조원으로 책정한 '한·칠레 FTA 지원기금' 규모를 농민단체와 '농촌당' 국회의원의 요구에 밀려 1조5,000억원(지방비 3,000억원 포함)으로 증액, 집단적 요구에 원칙 없이 굴복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정부 관계자는 "정치 논리에 밀려 너무 많은 보상을 하는 바람에 향후 FTA 추진 과정에서의 대내 협상력이 크게 약화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일 FTA 체결과정에서 중소기업이 피해 보상을 요구할 경우 정부의 반대논리가 궁색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효과적인 FTA 추진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FTA 추진 절차를 명문화한 관련 법을 제정해 일본과 싱가포르 등과의 FTA 체결은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 관례를 깨고 비준안 통과에 당초 예정의 두 배인 13개월이 걸리면서 대외적으로 우리나라의 자유무역 의지가 크게 훼손됐다. 일본과 싱가포르 등은 한국 정부의 FTA 추진 의지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한국을 'FTA 거부국가'로 분류해 놓고 있으며, 멕시코도 일본과의 협상에 주력하기 위해 한국과의 FTA 협상을 무기 연기시킨 상태이다.
정부는 한·칠레 FTA 비준안의 지각 통과로 대내외 협상력에 타격을 입기는 했으나, '동시다변(同時多邊)', '선근후원(先近後遠)' 전략으로 FTA를 계속 추진할 예정이다. FTA 협상을 동시에 여러 국가와 실시하고, 일본·싱가포르 등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와 먼저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동시다변' 전략을 채택키로 한 것은 여러 나라와 동시에 FTA협상을 벌이면 농업과 제조업 등 국내 업종간의 이해득실이 상쇄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또 FTA 체결이 쉬운 나라와의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하고, 협상 체결이 어려운 국가는 나중에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일본과의 협상은 지난해 12월22일 시작했으며, 싱가포르와도 지난달 27일 1차 협상을 벌여 대충의 윤곽을 확정한 상태이다.
정부는 중기적으로는 미국, 유럽연합(EU) 등 거대·선진 경제권과의 FTA를 추진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한·중·일 3국과 아세안 국가를 묶어서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EAFTA)를 창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 한·칠레 FTA 추진 일지
1998. 11 한·칠레 FTA 추진 결정
98. 11 양국 정상회담에서 FTA 추진 논의
99. 12 FTA 1차 협상 (칠레 산티아고)
2000. 2 FTA 2차 협상(서울)
01. 3 상호 양허안 실무협의(산티아고)
02.10 협상 최종타결
03. 1 FTA 정식 서명
04. 2 FTA 국회 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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