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균 선생님! 선생님을 '진보학문과 민주교수운동의 대부'라고들 하지요. '민중운동의 스승'이라고도 하지요. 그 면에서 제가 덧붙일 말은 없습니다. 학문과 실천에서 아둔하고 게으른 제가 선생님의 업적에 대해 몇 마디 말을 보태거나 칭송하는 것은 오히려 선생님께 누가 될테니까요.대신 선생님과의 20년 가까운 인연 가운데 최근 몇 해 동안 선생님을 대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사람은 곤경에 처하면 모습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들 하지요. 특히 큰 병에 걸렸을 때 그렇다고 하지요. 그 면에서 저는 선생님의 진면목을 보았습니다. 2000년 초여름, 처음 암이 발견되고 다행히 응급수술을 받아 생사의 고비를 넘겼을 때부터 4년 가까운 투병생활 동안 선생님은 언제나 의연하셨습니다.
만날 때마다 그 사이의 치료과정을 따사로운 미소로 담담히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는 한때 설익은 의학도로서 선생님이 당신의 병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의학에서 이야기하는 이른바 '부정'(否定)의 심리상태가 아닌가 잘못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그 어렵던 시대, 고난에 굴하지 않고 학문과 실천을 통해 민중운동에 올바른 길을 제시하시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선생님의 참모습을 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선생님의 성품에도 기인하지만 민중과 역사에 대한 확신에서 우러나는 것이라는 점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선생님 가시는 길에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소박하게 이승을 화장으로 하직하시겠다는 선생님의 뜻을 거역하고 '민주사회장'이라는 조금은 번거로운 격식을 갖게 된 점 말입니다. 선생님을 떠나보내는 저희들의 아쉬운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이는 저희들의 이기심이 더 크게 작용하였다는 점을 이미 알고 이해하실 선생님께 고백합니다. 아직도 선생님이 이끄신 민중민주운동의 대의와 참모습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세상에 선생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통해 선포하고 또 그로써 흔들리는 저희들의 마음을 다잡기 위한 것이지요.
선생님이 눈감으신 2월 14일은 우리 민중민주운동의 역사에서 또 한번의 전진을 이룬 '부안주민 승리의 날'이자 '민중의 날'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확신하셨던 민중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김진균 선생님! 선생님의 영원한 벗, 모란민주공원의 전태일, 김경숙, 문송면, 문익환 동지들과 함께 억압과 차별 없는 평등세상에서 영면하소서.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전국교수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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