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겨울 뉴욕에서는 트럼펫 연주자 빌 딕슨을 중심으로 재즈 연주자들이 모여 '재즈 컴포저스 길드'라는 조직을 결성했다. 이는 재즈인이 개인이 아닌 집단의 이름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뮤지션의 낮은 출연료,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레코드 회사와의 부당계약 등을 자체적으로 방어하고 다수가 결정한 방향으로 행동하는 조합의 역할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그들은 스스로 레코드사를 설립해 연주는 물론 홍보와 판매까지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40년 전의 일이지만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매우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우리의 재즈 연주인들은 비상업적이라는 이유로 딱히 투자자가 나서지 않는 한, 레코드를 취입할 기회조차 없다. 이러다 보니 계약금 없는 계약, 소정의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인세 등 대가가 따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건 비단 재즈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음반, 출판, 공연 등 문화 전반에 기생하는 어두운 세력에 있다. 아티스트 창작물의 제작과 판매를 맡은 제작사는 원래 목적은 뒤로 미룬 채 이를 담보로 국가의 문화 예산을 끌어오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기회주의적인 세력은 문화사업이라는 가면을 쓰고 활동하며 아티스트의 판권 확보에 혈안을 올린다. 목적이 그러다 보니 정작 음반이나 책이 출간되더라도 그 이후 필요한 홍보나 유통은 대충 형식적으로 진행하다 만다. 작품도 얼마 가지 않아 시장에서 사장되고 만다.
삶의 질 향상과 꾸준하고도 활발한 창작물 발표를 위해서라도 재즈인 스스로 과거 뉴욕에서 그랬던 것처럼 일종의 길드를 결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남 무 성 재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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