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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본다]<7>1부 일본은 죽었는가?-일본의 저력 ⑥ 환경보존과 개발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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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본다]<7>1부 일본은 죽었는가?-일본의 저력 ⑥ 환경보존과 개발의 조화

입력
2004.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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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란 행위는 인간에게 무엇인가. 안락하고 쾌적하고 배부르고 싶은 욕망을 해결해줄 요술 방망이로 여겨지는 개발이란 것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인가. 이런 물음에 일본의 온천향 유후인(湯布院) 주민들과 시만토(四萬十)강 유역 주민들은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문명시대의 과제인 개발과 자연보전의 조화를 몸으로 실천해 가고 있는 모델이라 할 만 하다.

유후인

천으로 유명한 벳푸(別府) 뒷산을 넘어 삼나무 숲길을 30여분 달리면 마치 사발 속 같은 분지가 나온다. 높이 1,584m의 유후다케(由布岳)와 그 연봉들에 포근히 감싸인 곳이 유후인이다. 벳푸의 명성에 가려져 크게 빛을 보지 못했지만, 오랜 노력 끝에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온천객들에게 잘 알려진 온천의 명소다.

쌍봉낙타의 등짝을 닮은 봉우리 두개를 정점으로 넉넉하게 흘러내린 능선 아래 한 무더기씩 자리잡은 마을의 첫인상은 시골, 목장, 전통, 문화라는 단어를 연상케 한다. 인구 1만 2,000명의 소읍이라 하지만 일본 도시 특유의 잡담과 소음이 없다. 5층을 넘는 건물이 없어 어디서 보아도 이 마을 사람들이 신앙처럼 섬기는 유후산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우리 마을에는 없는 것이 많습니다. 첫째 고충건물이 없고, 환락가가 없습니다. 그 흔한 리조트 시설 하나 없어요. 그러니 요란한 간판도 없고 술 취한 사람을 보기 어렵습니다. 유흥업소가 생겨도 장사가 되지 않으니 몇 달을 버티기 어렵지요. 반대로 다른 시골에는 없는 것이 많습니다."

오늘의 유후인을 만드는 데 앞장선 미조구치 굼페이(溝口薰平·71)씨가 자랑하는 것은 옛모습 그대로의 숲과 오염되지 않은 냇물로 대표되는 자연환경과 수 많은 미술관, 전통예술 전시관, 영화제, 음악제 같은 문화자산이다. 그 말을 듣고 걸어서 둘러본 유후인 거리는 정말 품격이 넘쳐 났다. 작지만 공 들여 지은 건물들과 오래 된 주택, 여관, 상점, 역사(驛舍), 관청 등이 좁은 도로와 골목길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작고 소박한 간판이며, 자연을 소중히 여기자는 캠페인 글씨까지도 튀지 않고 겸손하다. 가메노이(龜井)별장이라는 전통여관은 땅이 1만 평이 넘는데 객실은 20개뿐이다. 여관이 아니라 숲속에 숨어있는 저택이다. 주인 나카야 겐타로(中谷健太郞·70)씨는 여관건물 처마 선의 조화를 살리기 위해 한국기와로 지붕을 이었다고 자랑하는 심미안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다고 이 마을이 한적한 휴양지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날로 늘어나는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친다. 주민들은 행여 관광객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나쁜 인상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듯, 친절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손님을 맞는다.

이 마을의 오늘은 주민들이 싸워서 만들어낸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 어떤 건물도 5층 이상, 높이 14.5m를 넘을 수 없도록 규정한 조례도 관청의 강요가 아니라, 아무도 유후산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자발적인 규제였다.

1959년 국민보양온천지로 지정된 이 마을은 1980년대 중반 개발이란 이름의 태풍을 맞는다. 객실 3,500개의 초대형 리조트 시설 건설사업이 착수되자 주민들은 합심해 땅을 팔지 않았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이 돈보다 소중하다는 생각이었다. 관청에서는 5층 이상은 허가할 수 없다고 버텼다. 건설성 장관이 담당 공무원을 도쿄로 불러 "왜 까다롭게 구느냐"고 혼줄을 내기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거대한 파워에 대항해 환경을 지켜냈다는 자부심을 갖는 근거가 그것이다.

주민들의 결정은 옳았다. 1970년대 연간 100만 명 정도이던 관광객이 지금은 4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고용과 소득이 따라 늘었다. 그래서 마을 지도자들은 살기 좋은 고향을 영원히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사람 기르는 일에 열과 성을 다 하고 있다.

시만토 강

코쿠(四國) 서남쪽 산악지대를 구불구불 흘러가는 시만토 강은 '일본 최후의 청류(淸流)'로 불린다. 산이 높고 경사가 가파른 일본의 강들은 길이가 짧고 물살이 빨라 대체로 물이 맑지만, 이 강의 청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196㎞를 흘러온 강물이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하구에서 맑은 물에만 자라는 파래(아오노리· 靑海苔)가 생산될 정도다.

이 사실은 시만토 강이 얼마나 맑은가를 말해주는 상징적인 예로 꼽힌다. 하구도시 나카무라(中村) 시에서 나는 아오노리가 일본에서 가장 맛이 좋다는 것과 생산량이 많다는 것도 강의 청정도와 관계가 있는 현상이다.

때마침 아오노리 채취기여서 쉽게 작업현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아열대 지방이라지만 최저기온이 0도까지 떨어진 날, 강풍 속에 물에 들어가 파래를 따는 주민들의 표정에는 생활의 고단함이 배어있다. 생산량이 푸짐한 데서 오는 만족감도 엿보였다. 채취선이 정박한 물가에 가보면 맑은 물속에 초록 색실 같은 파래들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카무라 시에서 30여㎞ 거슬러 오르며 관찰한 시만토 강의 모습은 감탄을 금하기 어려운 놀라움이었다. 유역 인구가 적다고는 하지만 8개의 시정촌(市町村)을 흘러온 강 가에 버려진 휴지 한 장이 없다. 오염으로 죽어가는 동강의 모습이 뇌리에 오버랩 돼 놀라움은 찬탄으로 바뀌었다.

강에서 발견되는 인공 구조물은 홍수 때 물속에 잠기도록 설계된 콘리리트 교량뿐, 호안 불록으로 둑을 직선화한 삭막한 풍경은 보이지 않았다. 왼쪽으로 강, 오른쪽으로 산비탈과 마을들을 끼고 달리는 좁은 도로변에는 은어낚시나 뱃놀이, 카누 등을 즐기는 관광객 상대 업소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 업소들이 강을 더럽힌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정도로 질서 있고 청결했다.

다음 날 유람선 위에서 본 시만토 강은 수심 2∼3m의 하류인데도 물밑의 자갈이 여울물 속처럼 선명했다. 삼나무와 대나무 숲이 투영된 물빛은 푸르다 못해 암록색이었다.

강을 이렇게 깨끗하게 보전하는 것이 주민과 관광객, 그리고 행정당국의 노력 때문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1975년 이 강이 일본 최후의 청류라는 이름으로 NHK TV에 소개된 뒤,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자연보전에 빨간 불이 켜졌다. 그 때 강을 지키자고 팔을 걷고 나선 것이 자치단체와 주민들이었다. 주민 소득원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때묻지 않은 자연이라면 이것을 길이 보전해 가는 것이 현명하고, 그 자원을 후세에 그대로 물려주는 것이 도리라는 인식에 눈을 뜬 것이다.

우선 강을 더럽히는 행위를 규제하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주부들은 부엌에서 나오는 쓰레기와 음식 찌꺼기 같은 것을 줄이고, 남은 국물을 하수구에 버리지 말자는 합의를 실천했다. 기름기가 묻은 접시를 바로 씻지 않고 휴지로 깨끗이 닦아낸 뒤에 씻었고, 세제사용을 줄였다. 지역 기업은 황폐한 산림을 사들여 기념 숲을 조성함으로써 환경을 지키는 일에 참여했다. 강변 땅을 사들여 개발행위를 예방하는 트러스트 운동도 일어났다.

고치(高知) 현과 각 기초 자치단체들은 개발과 보전의 양립을 꾀하는 독특한 시책을 창안했다. 순환과 조화와 예방에 관점을 둔 조례와 헌장을 만들고, 친 환경적인 개발공법을 도입했다. 시만토강 재단, 시만토강 기금, 시만토 서미트, 시만토 종합플랜 21도 그렇게 생겨났다. 이런 현지 분위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자연히 휴지 한 장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된다.

문 창 재/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실장

58세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일본 게이오대 신문연구소 수료, 한국일보 도쿄 특파원 등 역임 저서 "동경특파원 보고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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