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국회 본회의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는 이라크 파병안 만큼이나 싱겁게 끝났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표 단속에 나서고 일부 농촌 의원이 불참한 탓에 찬성(162표)이 반대(71표)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그러나 막후에서는 각 당 지도부와 '농촌당' 의원간에 기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표결은 오후3시10분께 박관용 국회의장의 개시 선언과 함께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우려했던 농촌 의원들의 저지는 없었다. 투표는 9일 본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통상적인 전자투표가 아닌, 투표용지에 의원의 이름을 적어 넣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투표가 시작되자 민주당 농촌 의원들이 본회의장 한 구석에서 대책을 숙의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반대하면 문책하겠다"는 최병렬 대표의 경고 탓에 가담하지 않았다.
오후3시30분.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농촌당' 총무격인 한나라당 이규택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시키겠다는 최 대표의 협박 때문"이라며 큰 소리로 불만을 터뜨렸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와 민주당 조순형 대표 자리를 찾아가 감사의 뜻을 전했다. 투표에선 여야 농촌 의원 대부분이 반대하고 도시 의원 대다수가 찬성해 도(都)·농(農)간 차이가 뚜렷했다. 우리당에서 3명의 의원이 찬성 당론을 어기고 반대 표를 던졌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도시 출신이지만 소신대로 반대 진영에 가담했다.
이에 앞서 각 당 지도부는 FTA 비준안 처리를 위해 오전부터 긴박하게 움직였다. 총대는 한나라당이 멨다. 최 대표가 직접 나서 농촌 의원을 설득하고 수시로 표를 계산했다.
최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반대할 의원은 아예 본회의장에 오지도 말라. 들어오면 찬성표로 간주하겠다"며 농촌 의원들을 압박했다. 또 농촌 의원 20여명과 가진 오찬에서도 "반대하는 비(非) 농촌의원은 공천에서 탈락시키겠다"는 극약처방을 내놓았다. 그는 "나도 성질이 있는 사람"이라고 위협했다.
민주당은 일찌감치 자유투표 방침을 정했다. 대신 조 대표가 나서서 "FTA는 반드시 통과돼야 하며 여기에 내 신임을 걸겠다"고 찬성 투표를 독려했다. 실제 투표에서도 찬반이 23 대 29로 거의 비슷했다.
열린우리당은 의총에서 찬성 당론을 재확인했다. 정동영 의장은 "한나라당의 절반이 농촌 의원인 만큼 최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며 한나라당에 공을 떠넘겼다.
박관용 의장도 "총무들이 의원들에게 애걸하라"며 통과를 독려했다. 박 의장은 회담에서 여야의 표 단속 결과를 확인, 동의안의 통과를 확신한 다음에야 비준안의 상정을 결심하는 등 시종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범기영기자 bum710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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