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 중인 7차 교육과정이 올해 들어 고교 3학년까지 적용된다. 이에 따라 교육 당국도 새 교육과정에 맞춘 대학입시 제도를 발표했다.7차 교육과정의 가장 큰 특징인 '학생 선택 중심 교육과정' 실현을 전제로 한 '선택형 수능'이 핵심이다. 비록 일부 영역에 국한되지만 학생들은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과 학과의 특성에 맞춰 배울 과목을 선택한 후 집중적인 학습을 통해 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과거의 획일적 입시제도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수요자 중심의 능동적 교육활동을 강조하는 7차 교육과정 취지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에 사회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이 시급히 요청되는 바 교육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문제는 7차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목적과 방향은 납득할 수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7차 교육과정에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 인프라도 감안하지 않은 채 졸속 추진함으로써 현장에서는 형식적이고 편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정된 입시제도에 따라 대학별 입시요강이 발표됨으로써 당장 입시를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국민 공통 기본교육 과정'이 적용되는 고1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으나 정작 학업 수준과 진로·적성에 맞춰 스스로 공부할 과목을 선택하는 '선택 중심 교육 과정'이 적용되는 고교 2, 3학년에 이르면 문제가 발생한다.
학생들은 고교 2, 3학년 동안의 총 이수단위(136단위) 중 스스로 28단위 이상 최대 50%까지 선택이 가능하나 실제로는 선택권이 거의 없다. 학교로서는 교사 수급과 교실 여건 등을 고려해 수업 내용을 편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학생들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상 학생 선택의 의미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한 온라인 입시 전문업체가 전국 891개 고교의 예비 고3생 4,6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수능을 치를 예비 고3생 3명 중 1명 이상이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과목 중에서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과목이 1과목 이상 있다고 답했다. 또 선택과목을 결정하는 데 학교측이 임의로 정했다는 의견과 어떻게 결정됐는지조차 모른다는 답변이 70%를 넘었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과목에 대해 73.6%가 인터넷 과외나 학원 수강을 하겠다고 답함으로써 공교육이 또 다른 사교육 수요를 유발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은 시행 초기라 잘못된 점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있다. 학교 현장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교육 당국의 지혜가 필요하다.
최 진 규 충남 서령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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