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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남기고/ 김진균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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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남기고/ 김진균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입력
2004.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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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진보학계를 이끌며 사회변혁운동에 앞장서 온 김진균(金晋均·사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14일 오전 9시40분께 경기 과천시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7세.김 명예교수는 대학시절 4·19 혁명을 겪은 이른바 '4·19 세대' 대표 지식인의 한 사람. 일찍이 산업화과정의 갈등을 학문적으로 분석하는데 애썼고 노동자, 도시 빈민 등 민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현실운동에 뛰어든 실천적인 학자였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회학과(57학번)와 대학원을 졸업한 김 명예교수는 31세에 서울대 상대 전임강사로 강단에 섰다. 75년 사회학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지난해 2월 정년 퇴임 때까지 35년 동안 서울대 교수를 지냈지만 그의 오랜 교수생활이 마냥 순탄했던 건 아니다.

강단에 선지 4년 만에 학술논문집에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을 다룬 글을 발표하려다 삭제되는 필화를 겪었고, 79년에는 대학신문에 기고한 글이 빠지고 광고로 바뀌는 수난을 당했다. 급기야 80년 '지식인 성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직됐다. 그러나 해직 4년 동안 후배들과 꾸린 '상도연구실'은 84년 산업사회연구회(현 한국산업사회학회)로 거듭나면서 민주화와 사회변혁 이론의 산실이 됐다. 처음 근대화론에 기울었던 사회학자인 그가 '연줄'로 엮어진 전통의 사회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계급'이나 '계급의식'에 주목하고, 여기서 운동 전략의 하나로 '민중' 개념을 끌어 낸 것도 이 시기를 전후해서다. '비판과 변동의 사회학'(한울 펴냄) '사회과학과 민족현실'(한길사 펴냄)에는 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서려는 그의 학문적 의지가 담겨 있다.

사회 참여는 88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을 맡으면서 적극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고문, 학술단체연합회 공동대표, 참교육시민모임 공동대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초대 이사장, 민주노총 지도위원, 진보네트워크 대표, 사회진보를 위한 민주연대 지도위원 등 20년 가까이 수십 개 사회 단체에 참여했다. 2000년 4월 대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에도 민주노총 지도위원과 민중연대 고문 등을 맡아 활동했다. 지난해 11월부터 항암치료가 어려울 정도로 병세가 위중해졌고 최근에는 한 달에 1, 2회 통원치료만 받았다. 퇴직 후 경기 과천에 연 '청정서실'에서 해오던 사회학 관련자료 정리도 병세가 위독해지면서 중단했다.

유족은 부인 정혜영(鄭惠英·65)씨와 학술정보개발·컨설팅 회사인 (주)진안진에 모두 함께 근무하고 있는 아들 태진(台鎭·39)과 영진(永鎭·38), 딸 지인(知仁·34)씨 등 2남 1녀. 장례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등 학계·사회단체 대표가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아 '민주사회장'으로 치른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영안실, 발인 17일 오전 7시30분, 장지 경기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 (02)760―2018∼22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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