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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주 의학전문기자의 여자는 왜?]<40> 결혼과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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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주 의학전문기자의 여자는 왜?]<40> 결혼과 가족관계

입력
2004.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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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로, 그리고 어머니로 산다는 것은 여자에게 기쁨인 동시에 고통이다. 거의 혼자서 도맡는 육아와 집안일은 '장애물 달리기'에 비유될 정도로 여자의 일생을 복잡하고 고단하게 만든다. 육체적 부담 못지 않게 여성을 지치게 만드는 것은 가족과의 관계다. 남자보다 훨씬 예민한 여성은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으며 살아간다. 양창순 정신과 전문의(양창순 대인관계연구소 소장)는 "가족은 누구도 어쩌지 못할 애증으로 얽힌 관계"라면서 "서로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또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 불가사의한 관계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행복한 결혼생활, 여성 건강의 열쇠

결혼이 남자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연구논문은 많다. 결혼생활이 행복하든 하지않든 결혼을 통해 남자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의 결혼생활은 이런 단순한 방식으로 효과의 유무를 결론 내리기 쉽지 않다. 만족스런 결혼은 여성의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결혼생활은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행복한 결혼생활은 심장병에 덜 걸리게 할 뿐 아니라, 화나는 일이나 우울하고 근심스런 상태도 상대적으로 덜 만든다. 결혼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해서 모두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혼 사별 독신보다는 결혼이 훨씬 여성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피츠버그대 린다 C. 갈로 박사팀이 40대 여성 490명을 대상으로 13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결혼생활이 거의 만족하지 못한 여성은 건강상태도 좋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은 점점 나빠졌다. 반대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여성의 경우 상대적으로 날씬하고 중년이 돼 몸이 불어나는 속도도 늦었다. 당연히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았다. 덜 만족스런 결혼생활을 하는 여성의 경우 운동도 거의 하지않는 편이었다. 미국 '건강심리학'(Health Psychology) 2003년 9월호에 따르면 갈로박사는 '결혼 혹은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중요하다. 만약 그 상태가 훌륭하게 유지된다면 인생도 유쾌할 수 있으며 그것은 곧 건강상태도 좋다는 뜻'이라고 진단했다. 행복한 관계일 때 부부는 함께 운동하며 식사하는 것을 즐긴다.

왜 평균적인 결혼생활에서 남자는 여자보다 만족이 클까. 텍사스대에서 인간생태학을 전공하는 티모시 J 로빙박사는 '남자는 아내를 중요한 지지자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여자는 훨씬 더 광범위한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정신적 지지를 얻는다. 결혼생활, 특히 정신적 면에서 남자만큼 얻는 것이 많지는 않다. 보스턴대 정신분석의 데보라 벨 박사는 20년이상 결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왔는데, 여성은 행복한 결혼상태를 유지해야만 결혼생활에서 얻는 장점이 있었지만 남성은 행복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장점을 많았다는 것. 남녀관계에서 부정적인 측면에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더 배우자에게 협조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자 중에 끔찍한 악처도 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여자는 누군가를 돌보고 격려하는데 남자보다 훨씬 헌신적이다.

아내로, 어머니로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가족에 대한 오해와 진실

양창순원장은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노릇 며느리노릇 엄마노릇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인 일도 잘해내길 기대하고, 아내 역시 남편에게 거는 지나친 기대를 건다"면서 "그러나 가족이란 나의 모든 기대치를 다 걸어도 되는 관계라고 여기는 것은 치명적 오해"라고 말했다.

가족만큼 서로에게 높은 기대를 거는 관계도 없다.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이 완벽하기를 기대하고, 사회에서 채우지 못한 것을 대신 채워주길 기대하기 한다.

양원장은 "기대치가 큰 만큼 실망과 피해의식 분노도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다"면서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치처럼 부부간, 부모 자식간에도 현실적이 돼야 한다" 고 말했다. 가족간에도 구성원끼리 서로 잘 보이려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가족이니까 다른 인간관계처럼 잘 보이려고 할 것 없고, 굳이 가면 쓰고 대할 것도 없고 그저 편하게 있는 그대로 대하면 된다고 여기는 경향이 많다. 물론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가족 간에도 어느 정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어려워질 수 있는 관계임에는 분명하다.

흔히 부부간에는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다 표현해도 된다고 여기기 쉽다. 여과 없이 가족에게 심한 화살을 퍼붓고, 서로들 몸에 걸친 옷 뿐 아니라 마음의 옷까지도 벗은 상태로 맨몸을 드러내고 있으니 더 크게 상처받고 더 많이 피를 흘리게 될 수 밖에 없다. 양 원장은 "가정도 하나의 작은 사회이며, 결혼생활에서도 최소한의 얇은 가면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감정의 수문을 함부로 활짝 열었다가는 자칫 둑까지 무너져 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예의를 지키고 테크닉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yjsong@hk.co.kr

■"아빠같은 남자는 안돼"

김명오(43·자영업)씨는 안방에서 신문을 보다가 딸아이가 꺅! 하고 내지르는 비명소리에 깜짝 놀랐다. 뒤를 이어 '어머어머 어쩜!'하는 아내의 비명이 이어졌다. 모녀는 거실에서 TV를 보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시끄러워"하고 소리를 지르려던 그의 시선이 화면에 가서 멎었다. 한 젊은 연예인 커플이 결혼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모습이 가관이었다.(그가 보기에) 여자가 미치도록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걸 말과 행동으로 넘치도록 표현하고 있었다. 참으로 낯간지러운 장면이었다. 모녀는 여전히 윽, 꺅 하며 난리를 쳤다. 그러더니 아내가 딸의 손목을 나꿔채며 외쳤다. "얘, 남잔 정말 저래야 해! 너 무슨 일이 있어도 저런 남잘 데려와야 한다! 니 아빠같은 남잔 절대 안돼!"

"아니, 저 여자가?"하는 순간, 딸애가 마주 소리를 질렀다."엄마엄마, 그걸 말이라고 해? 난 절대 아빠 같은 남잔 안 만날 거야!"

아내는 그렇다치더라도 중1짜리 딸한테 강펀치를 맞은 이 이버지, 슬그머니 돌아서는데 갑자기 발이 헛놓이더라고….

"이제껏 아내나 아이들한테 자상하게 감정표현을 못했다는 건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 세대가 그렇지 않나요? 일일이 끌어안고 사랑한다, 너 없인 못산다, 그걸 입 밖에 내도록 교육받진 못했지요. 저도 가끔은 퇴근할 때 아내나 애들한테 보고 싶었다, 잘 지냈니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색해서 나도 모르게 텔레비전 소리 시끄럽다, 집안을 왜 이리 어질렀냐 하고 소리나 지르게 되니, 참…"

아마도 감정표현에 서툰 많은 남자들이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감정을 억압하고 내색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남자다운 행동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성장한다. 그러다보니 감정 표현에 서툰 건 물론이고 나아가 감정의 힘 자체를 과소평가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감정적으로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 그렇게 대하다 보니 김명오씨 같은 케이스도 생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과소평가해선 안되는 것이 감정의 힘이다. 감정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심리를 이루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르시시즘과 열등감, 이중성 등. 그 중 어느 하나가 건드려져 제대로 처리되지 못할 때, 그것이 상처로 마음에 고이는 부분이 바로 감정이다. 그리고 이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를 알고 상대방을 움직이게 하려면 이 감정의 힘에 대해 알고 그것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의 핵심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작은 것에 매달리고 강박적이고 잔소리가 많고 짜증을 잘 내는 사람은 '불안'이,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사람은 '분노와 우울'이 핵심감정인 경우가 많다. 만약 내게 그런 행동조짐이 보인다면, 아, 나를 이끄는 핵심감정이 이런 것이로구나 이해하고 그것을 조절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상대방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불안이나 분노 등의 감정을 보일 때 "이 친군 왜 밤낮 이 모양이야" 하고 화내기보다 그것을 이해해 줄 필요가 있다. 나아가 공감과 위로까지 보여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상대방은 자신의 감정이 이해받은 것에 그 무엇보다 감동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개 그런 감동은 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로 이어지는 법이다. 만약 한 가정에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아버지라면 어떤 조직,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환영 받지 않을까.

양 창 순 신경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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