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 지음·권정원 편역 미다스북스 발행·1만1,000원
'내가 단 것에 대해서는 마치 성성이가 술을 좋아하고 원숭이가 과일을 즐기는 것만큼 좋아한다네…모든 내 친구들은 단 것이 생기면 나에게 주곤 했는데, 오직 박제가만은 그리 하지 않더군…친구의 의리상 허물이 있으면 바로잡아 주는 것이 당연하니, 그대는 내 대신 박제가를 깊이 나무라 주기 바라오.'
이덕무(1741∼1793)가 이서구에게 보낸 편지다. 박제가를 혼내달라는 이덕무의 당부를 읽고 웃음을 참을 수 있는 독자는 드물 것이다. 겨울밤에도 냉골에서 논어를 읽었다는 당대 책읽기 선수의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산문이다.
스스로를 책에 미친 바보(간서치·看書痴)라고 부른 그는 "배고픔과 추위, 근심과 번뇌 그리고 기침을 잊기 위해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맹자'를 200전에 팔아 밥을 해먹고 이를 자랑하자 유득공이 '좌씨전'을 팔아 술을 사줬다는 편지에선 '한서'로 이불을 덮고 '논어'로 병풍을 세워 가며 공부하는 선비의 생활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궁핍함을 숨기려 하기 보다는 넉넉한 웃음으로 감싼다는 데 이 책의 감동이 있다.
소품을 엮은 책이지만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체,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이 무릎을 치게 한다.
/이종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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