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스 판 데어 호프·니코 로전 지음·김영중 옮김 서해문집 발행·1만2,000원
농산물 가격이 폭등을 해도 생산지에서는 값의 변동이 그리 크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생산자인 농민들이 받는 돈은 별로 변함이 없다. 생산자들은 제 값을 못 받는 것이고, 소비자들은 실제 이상으로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익은 누가 챙기는가. 바로 중간 상인들이다. 유통 뿐 아니라 생산, 판매까지도 장악한 이들은 가운데 서서 막대한 폭리를 얻는다.
국가 간 무역도 마찬가지다. 특히 농산물의 경우가 심하다.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이 거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한 마디로 불공정거래인 것이다. 그렇다면 공정거래는 과연 가능한 것일까. 이 책은 이에 대한 답이다. 공정거래를 위한 가난한 사람들의 무역회사가 주제로,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어떻게 설립돼 성공했는지를 창시자들의 자서전 형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1985년 5월, 네덜란드 출신으로 멕시코에서 커피 농사를 짓는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프란스 판 데어 호프 신부와 남미를 위한 종교간 개발기구인 참여연대에서 일하고 있는 니코 로전은 어느 기차역 식당에서 만났다. 가난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은 가난을 퇴치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모았지만, 문제는 방법이었다. 대규모 원조 프로그램이나 기부 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아무리 선의라도 이러한 원조는 인간의 가치를 빼앗기 때문이다. 이 때 커피 농사를 짓는 멕시코의 한 가난한 농부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원조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거지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정당한 가격으로 우리의 커피를 구입하기만 한다면, 원조 없이도 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핵심은 원조가 아닌 공정한 거래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멕시코 커피를 네덜란드에 파는 '막스 하벌라르'라는 무역회사가 생겨났다. 회사 이름 자체가 무척 상징적이다. 막스 하벌라르는 19세기 네덜란드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막스 하벌라르'의 주인공 이름이다. 그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의 권리를 위해 열정적으로 투쟁했다. 이 회사는 악전고투 끝에 10여년 만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유럽 여러 나라에 진출했고, 품목도 차 꿀 바나나 의류 등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문제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은 맛있고 품질이 좋아서 라기보다는 '가난한 농민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브랜드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으로서 사업을 넓히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 설립자 무하마드 유누스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국내에서는 2002년 8월 '세상사람들의 책'이란 출판사에서 번역본을 발간했다)와 같은 성격이다. 함께 읽으면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저자들은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이 올바르게 기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의 구체적 실행방안을 생각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논설위원 sh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