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지음 생각의나무 발행·9,500원
김훈(56)씨가 소설 '현(絃)의 노래'를 펴냈다. 세번째 장편이다. 그는 그전에 두 편의 장편소설과 한 편의 단편을 썼으며 '칼의 노래'로 2001년 동인문학상을, '화장'으로 2004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독한 과작(寡作)의 작가임에도 '품질 보증 상표'가 붙은 셈이다. '현의 노래'는 김씨가 일본 교토(京都)에서 두 달 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끙끙대며 써놨던 100매 원고를 모두 버리고, 보이는 것이라곤 눈 밖에 없던 기타야마(北山)의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950매 장편을 다 쓰고 지난 주말 귀국했다. "대학 다닐 때 삼국사기를 읽다가 우륵을 만났다. '가야인인 우륵은 가야금을 만들어 연주하던 악사였다.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그는 신라로 도망쳤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나를 매혹시킨 것은 '도망쳤다'는 대목이었다."
악기 하나를 들고 조국을 등지고 적국으로 가는 찬란한 배반. 예술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역사 기록의 빈 자리를 이야기로 채운다. 그것이 소설가가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그는 역사에 이름이 남겨진 악사 우륵의 삶에다 제자인 니문과 대장장이 야로, 신라의 장수 이사부와 시녀 아라, 우륵의 아낙 비화 등 여러 인물의 사연을 함께 엮었다.
"그때는 신라가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던 시기다. 피비린내 나는 동족 학살이었지만 도덕의 이름으로 비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한 민족이 통합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행위다. 선도 악도 아닌, 다만 총체적 비극일 뿐이지."
윤리와 이념의 잣대를 뛰어넘는 것을 추구한다는 데서 '현의 노래'는 바로 전 장편 '칼의 노래'와 쌍둥이다. '칼의 노래'에서 그 '무엇'은 무기의 순결성이었고 '현의 노래'에서는 악기의 순결성으로 옮겨졌다. 이순신도, 우륵도 덧없는 것을 가지고 살육의 시대와 맞서는 영혼이다. 이순신은 칼로, 우륵은 소리로였다. 그러니까 김훈씨가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나'와 '너'로 갈라놓고, 옳고 그름을 논하려는 세상의 강고함에 대한 허무와 피로감이기도 하다.
"에세이를 쓸 때 나는 문장에 모든 것을 다 넣으려고 했다. 그것이 문장으로 말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문장이 아니라 이야기로 말하는 소설은 그렇게 쓸 수 없었다." 기자시절 미문(美文)으로 필명을 날렸던 작가의 고백이다.
그래서 소설의 주제에 따라 문체를 달리하기로 했다. 단숨에 승부하는 칼의 얘기는 건조하고 긴장감 가득찬 '휘모리' 문체를, 선율이 이어지는 소리의 얘기는 단순한 문장 구조를 유지하되 수사(修辭)를 입힌 문체를 쓴다는 '언어의 전략'을 세웠다. 소리는 귀로 들어왔고, 입으로 들어왔고, 콧구멍과 땀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우륵의 몸은 소리에 젖었고, 몸속에서 바람이 일고 숲이 흔들렸다.
그는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이루지 못한 게 있다"고 말한다. "우륵이 연주하는 소리의 가락을 도저히 글로 묘사할 수 없었다. 가야금 연주자인 황병기 선생이 우륵의 음악을 어떻게 복원해야 할지 고민하다 별을 보고 답을 찾았다고 하더라. 자신이 보는 별이 우륵이 봤던 별과 같다는 것을 깨닫고 곡을 쓸 수 있었다고 했다. 나도 고령, 함안 등 옛 가야의 마을을 다니면서 별을 봤다. 그러나 며칠을 지내면서 아무리 밤하늘 별을 봐도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글이 소리를 따라갈 수 없음을 작가는 한스러워했다. 문장의 한없는 순결성을 추구한다는 데서 그는 자신의 소설 속 이순신과, 우륵과 닮았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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