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규 지음 문학과지성사 발행·3만2,000원
한국과 중국이 역사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만주의 핵심 지역인 '요동(遼東)'을 하나의 역사 공동체로 정리하는 연구 성과가 나와 주목된다. 언뜻 보면 '요동사(遼東史)'라는 개념은 매우 낯설다. 그 동안 사용되지 않은 개념일 뿐 아니라 과연 이런 개념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서강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는 이미 '한중관계사'(대우학술총서)라는 책에서 요동의 종족과 국가를 중심으로 한중간에 펼쳐진 역사를 정리한 바 있다. '요동사' 책에서도 요동을 하나의 역사공동체로 설정하고 그 동안 이 지역의 역사를 아전인수격으로 다루어 온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 혹은 애국주의적 아집이 논리적으로 극복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고구려사가 한국사의 한 장이 됨과 동시에 중국사의 한 장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은 우리 학계에 만연한 민족주의적 시각을 극복하고 동북 아시아사라는 큰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진전된 역사 이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선진(先秦) 문헌, 중국 25사, 한중 양측의 실록 등 현존하는 1차 사료, 한중 양측의 역사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여러 민족(종족)의 민족지(民族誌 또는 종족지)와 주변국의 방대한 논문들을 낱낱이 살피고 해석한 끝에 요동을 제3의 역사공동체로 규정했다. 책에서는 오늘날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만주라고 부르는 곳, 중국인이 동북지방이라고 부르는 곳, 전통적으로는 요동이라고 일컬었던 요하 유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예맥계의 조선 부여 고구려 등과 숙신계의 말갈 여진 만주, 동호계의 선비 거란 몽골 등 여러 세력이 번갈아 이 지역사의 중심이 돼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및 요 금 원 청(후금) 등의 여러 나라를 세우고 명멸한 것으로 파악한다. 특히 요동을 한반도의 한인(韓人)이 주체가 된 '역사상 한국'의 여러 국가들이나 한인(漢人)이 세운 '역사상 중국'의 여러 국가들과는 구별되는 역사공동체로 파악했다. 고조선도 지리적으로 요동에 위치해 중국이나 한국의 국가들과는 독립된 별개의 국가라고 본다. 저자는 요동을 별개의 역사공동체라고 할 때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동류 의식과 역사 의식의 공유를 들고 있다. 이는 전근대시기 민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처럼 요동에 과연 역사공동체가 존재했는가, 혹은 지금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요동과 만주의 개념에서도 약간의 혼란이 있다. 분명 요동은 중국이나 한국과 같은 특정한 역사공동체 즉 나라의 명칭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 지역 개념을 내포한 말이다. 그곳에는 중국이나 한국과 구별되는 맥 예 거란 여진 등 별개의 역사공동체들이 다수 존재했다. 그런 의미에서 요동의 역사공동체는 그 본질적 성격 면에서 한국이나 중국과 분명히 같지 않지만 그 지역에서 펼쳐진 여러 국가사를 하나의 역사공동체로 보기는 어렵다. 이 책은 현재의 영토 개념 안에 속해있는 중국이나 한국의 개념을 과거의 일정 지역과 대비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지 학계에 논쟁을 던져주고 있다.
/송호정·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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