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번역 출판된 영미권의 주요 소설책 가운데 94%가 오역이나 불충실한 번역, 표절 등으로 믿고 읽을 수 없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또 중복해서 번역된 소설·희곡 중 절반이 넘는 책이 이미 출판된 다른 책을 베끼는 등 번역 작품의 표절이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관련기사 A18면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은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2년 8월부터 진행한 '영미 고전문학 번역 평가사업'을 최근 마무리하고 그 결과를 13일 공개했다. 연구 책임자 김영희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등 영미문학연구자 44명이 참여한 이 작업은 외국 문학작품의 번역 실태를 체계적으로 조사·평가한 국내 첫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영미문학연구회는 소장 영문학자들이 주축이 돼 1995년 창립된 연구 단체다.
이번 평가는 해방 이후 2003년 7월까지 국내에서 출간된 영미문학 고전 36편, 573종을 대상으로 했다. '노인과 바다' '테스' '폭풍의 언덕' '로빈슨 크루소' '허클베리핀의 모험' '모비 딕' '분노의 포도' '위대한 개츠비' 등 소설이 30편으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희곡 작품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햄릿,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 시는 '실락원' '캔터베리 이야기'가 포함됐다.
평가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전체 573종 가운데 310종(54%)이 이미 나온 다른 번역책을 표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모비 딕'은 검토 대상 번역책 중 14종(78%)이 표절이었고, '주홍글자'는 39종(75%), '폭풍의 언덕'은 23종(68%), '제인 에어' '오만과 편견'은 각각 16종(64%), 14종(64%)이 다른 번역본을 베낀 것으로 밝혀졌다.
또 '로빈슨 크루소' '무기여 잘 있거라' '오만과 편견' '모비 딕' 등 13편은 번역의 정확성, 문장의 가독성 등에서 추천할만한 번역서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평가됐다. 독자들이 즐겨 찾는 소설 중 평가단이 추천가능하다고 판단한 번역본은 검토 대상 449종 중 25종(6%)에 불과했다. 서가에 가득 꽂힌 영미권 번역 소설 중 원서에 충실하고 문장에 무리가 없는 책은 20권 중 고작 1권뿐이라는 얘기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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