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날아온 큐피트의 눈먼 화살. 이게 무슨 감정일까. 그녀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심장 박동수는 2배로 늘고, 금새 얼굴이 붉어진다. 이제 세상엔 두가지 종류 뿐. 그녀와 그녀 아닌 것들. 나이가 많다구? 그게 왜! 내 마음은 이미 소리없이 그녀에게 달려가 속삭이고 있는 걸. “사랑해, 누나!”“웃기지 마, 어린 애가….” 화를 내고 돌아섰지만, 왜일까, 가슴이 이렇게 뛰는 것은. 친동생 같이 순진하고 귀엽게만 여겼던 그. 힘들 때 내 곁을 지켜주던 그에게서 시나브로 남자의 냄새가 짙어진다. 주변에서 비웃지는 않을까? 아니야 이 느낌, 이 감정에 솔직해지자. 더욱 재미있고 보다 자유롭게 잘 살 자신이 있어.
오빠, 동생이 여보, 당신으로 바뀌는 것은 당연시 하면서도 누나, 동생이 여보, 당신으로 변하는 것은 사련(邪戀)처럼 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 봐야 별거 있겠어?” “한때의 바람이겠지” “그래도 어떻게 누나를….” 심리적 거부 반응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고, 나이 차가 서너살 이상 되면 노골적인 비아냥까지 섞였다. 때론 그런 구설 뒤로 “나도 영계랑 사귀어봤으면…” “돈 많은 누나 만나 좋겠다…”는 등 선망과 질투가 뒤섞인 정체불명의 감정들이 아웅다웅 거렸다.
하지만 결혼 풍속도 역시 확 달라졌다. 부와 사랑, 미모와 나이 등 갖가지 장벽들이 남녀의 감정을 제약하던 시절이 가고 마음 가는대로, 정 끌리는 대로 사랑의 결실을 맺는 시대다. 이중 연상녀, 혹은 연하남과 엮어가는 사랑 얘기는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TV드라마 ‘천생연분’의 인기비결도, 이젠 익숙한 듯 하지만 여전히 이색적인 연상연하 커플을 소재로 포착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남녀 주인공들의 과잉연기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이러쿵 저러쿵 들려오는 풍문 속에서 연상연하 커플은 어느덧 새로 결혼하는 열 커플 중 한 커플 이상을 넘길 정도가 됐다. 왜일까? 그들의 내밀한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대로 속 빈 강정일까. 아니면, 꿀단지라도 숨겨놓은 듯 달콤함에 흠뻑 빠진 채 표정 관리 중일까.
그러고 나면 혹시 주변의 누이, 동생들이 새롭게 보일 지도 모를 일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사진 김주성기자 peom@hk.co.kr
■연상연하 유명인 커플
연상연하 커플은 알게 모르게 예전부터 적잖이 만들어졌다.
역사적인 인물로는 우선 영국이 낳은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들 수 있다. 그는 18세때 8세 연상의 앤 해서웨이와 결혼했다. 정복자 나폴레옹이 6년 연상의 조세핀에게 바쳤던 사랑이야기는 수세기가 흐른 지금도 유명하다. 작곡가 쇼팽이 7년 연상의 소설가 조르쥬 상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의 음악 중 상당수는 세상에 탄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전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는 존 케리 상원의원 부부가 화제다. 테레사 하인즈 케리는 전 남편이 비행기 사고로 숨진 후 남편 친구인 케리와 결혼한 케이스로, 다섯살 연상이다.
미국 연예계에서는 연상연하 커플이 부지기수다. 영화 '쇼생크탈출'의 주인공 팀 로빈스는 12년 연상의 영화배우 수잔 서랜든과 결혼, 행복한 나날을 지내고 있다. 특히 수잔 서랜든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데드맨워킹'은 남편 팀 로빈스가 감독한 영화.
영화 '결혼하는 남자'를 함께 찍으면서 실제로 결혼에 성공한 알렉 볼드윈과 킴 베이싱어 역시 다섯살 차이의 연상연하 커플.
비틀스 해산후 폴 매카트니와 함께 그룹 윙스를 이끌었던 부인 린다 이스트만은 한살 연상이었다. 1998년 린다가 유방암으로 사망하기 까지 부부애를 과시했었다.
폴 매카트니와 함께 비틀스의 실질적인 리더였던 존 레논은 일곱살 연상의 일본출신 전위 예술가 오노 요코에 반해 조강지처와 아들을 버리고 결혼을 감행했다. 오노와 결혼한 그는 6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알몸으로 평화운동을 하는 이른바 '베드인(bed-in)'을 벌여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기타의 신이라고 불렸던 팝아티스트 에릭 클랩튼은 비틀스의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의 부인 패티 보이드에게 바치는 '레일라'라는 불후의 명곡을 남겼고, 또 다른 명곡 '원더풀 투나잇'으로 한살 연상인 그녀의 마음을 움직여 결혼에 골인했다.
이밖에 데미 무어가 16년 연하의 배우 애쉬턴 커처와 염문을 뿌리고 목하 연애중이며, 제니퍼 로페즈 역시 3년 연하인 벤 애플랙과 수년간 사귀다가 최근 헤어지기도 했다.
국내 연예계 연상연하 커플의 원조는 신성일 엄앵란 부부. 당시 당대 최고의 배우가 결혼한다는 사실도 화제였지만 신랑이 한 살 어리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관심거리였다. 가수 노사연-이무송부부, 탤런트 권오중-엄윤경 부부는 3년, 탤런트 김미숙-최정식부부는 4년, 황신혜-박민서부부, 송채환-박진오 부부는 각각 2년 연상연하 커플이다. 최근 결혼을 발표한 탤런트 김보연씨의 남자도 일곱살 연하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연상연하 | 실패담
당연한 일이지만 연상연하 커플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실패담은 어떤 것일까.
ID가 '빛과 소금'(26)인 한 연상연하 커플모임의 카페 운영자도 연하남과 3년여간 사귀다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그녀가 대학교 1학년 때,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이가 같은 교회에 다녔던 고등학교 1학년생. 교회 일을 같이 하며 친해지긴 했지만 동생같이만 여겨졌던 그 애가 불쑥 전화로 사랑을 고백해왔다. "지금 장난치냐"며 화를 내곤 전화를 끊긴 했지만, 영문을 알 수 없게도 마음이 두근거렸다. 다시 걸려온 전화 수화기 너머로는 눈물을 흘리는 목소리였다. "나이차이가 나는 게 뭐가 어때서…." 결정적으로 그가 불러주는 노래에 마음이 넘어갔다.
"그 나이 때 애들은 누나 좋아하지만 그러다 말거다"는 등 주변과 집안의 반대도 많았지만, 나이에 비해 조숙했던 그가 믿음직스러웠고 기댈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고등학생과의 연애에 대한 주변의 시선이 좋을 리 없었다. 게다가 고3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결국 고3을 넘기면서 둘의 관계가 소원해졌고 남자가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던졌다.
"그 애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기다렸지만, 결국 고비를 넘지 못했어요. 그 애의 마음이 정말 한 때의 바람이었을지 모르죠. 차라리 그 애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사귀었다면 잘 됐을 텐데…."
■연상女 연하男
'이웃집 누나'를 몰래 사랑하다 홀로 서럽게 밤을 지새야 했던 70∼80년대 청춘들은 땅을 치고 후회할 노릇이다. 이젠 '사랑해, 누나'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데다 국화꽃 같던 누님 절반 가까이가 파릇파릇한 동생들과 결혼하고싶다지 않은가.
최근 결혼정보업체 닥스클럽이 전국의 미혼여성 604명에게 '결혼하고 싶은 배우자의 연령대'를 물은 결과 298명(49.3%)이 '연하의 남성과 결혼하고 싶다'고 답했다. 연상남과 결혼하고 싶다는 의견(36.8%)보다 더 많았다. 2002년 통계청 기준으로 결혼하는 열 커플 중 한 커플 이상이 바로 연상연하 커플이다. MBC '천생연분'은 황신혜와 안재욱를 출연시켜 연상연하의 알콩달콩 러브스토리를 광장으로 내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지만, 한 두살이면 몰라도 서너살 씩 차이가 나면 그 때부터 고개가 좌우로 흔들린다. "그게 얼마나 오래가겠니" "철 모르고 그러지"…. 연상연하를 둘러싼 베일은 완전히 벗겨지지 않았다.
진화의 돌연변이 VS 새로운 진화 - 연상연하의 진화론
"곧 깨지겠지만, 영계랑 잘 놀아봐." 연상연하는 일시적인 바람일 것이라는 이 메시지는 놀랍게도, 통념의 수준이 아니라 과학적인 뒷받침까지 받고 있다.
최근 논란 속에서 부상하고 있는 진화심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남편이 부인보다 나이가 많은 것이 인류 진화의 방향이다. 연상연하는 이에 역행하는 돌연변이 격. 실제로 미국 텍사스대 진화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스가 전세계 37개 문화권을 조사한 결과, 남자는 평균 2.5세 정도 어린 여자와 결혼하기를 희망하고 여자는 3.5세 위인 남자를 원했다.
이유는 통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족 번식이란 동일한 목적을 가졌지만 짝짓기 과정에서 남자는 '젊음', 여자는 '부(富)'를 최우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남자는 자식을 키우기 보다는 더 많은 씨를 뿌린다는 단기적 입장에서 생식능력이 왕성한 젊은 여자를 찾는 경향인 반면, 종족 번식의 기회가 적은 여성은 장기적 전략에서 낳은 자식을 확실하게 키울 수 있는 재력 있는 배우자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심리가 유인원 시절부터 선사시대를 거치며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의 전제는 남자가 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가 부를 가진다면 전세역전도 당연히 가능해진다. 젊음을 좋아하는 것은 남녀 다를 바 없다. 최재천 서울대 교수는 "진화론의 입장에서 연상연하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여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아지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며 "굳이 경제력을 따질 필요가 없어진 여성들이 좀더 자유롭고 나긋나긋한 연하의 남자를 선호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여성의 사회지위 향상이라는 시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진화가 진행되는 격이라고 볼 수 있다.
어머니의 그림자 VS 이상적 여인 - 연상연하의 심리학
전통적인 정신분석학의 잣대를 들이대면 연상녀를 좋아하는 남자의 심리는 일탈적이고 일시적인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막 벗어났지만 완전히 어머니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사춘기 소년들의 첫사랑 상대가 바로 여선생님이나 친구의 누나 등 연상의 여인들이라는 것. 그들은 곧 어머니의 그림자와 같았다. 연상의 여인을 좋아하는 남성 심리는 일종의 극복 대상이거나 성숙의 과정 같은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한국 남성들의 이상적 여인상은 '누나' 상이라는 또 다른 해석도 나온다. 한국 남자들이 예전부터 누나를 매우 좋아했는데, '거울 앞에 선 국화꽃 같은 누님'의 모습에서 어머니와 아내의 장점을 발견했다는 것.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아래서 억눌렸던 심리가 드디어 해방됐다는 주장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는 "연상연하는 부부가 짐을 나눠가지는 격"이라며 "한국 남성들이 스스로의 구속에서 벗어나 매우 솔직해졌다"고 말했다.
그 나이만 좋아 VS 40대도 몸짱 ― 연상연하의 생리학
순수하게 생리학적 차원에서 보면 연상 연하는 최상의 커플이긴 하다. 남자의 성적 능력은 20대 전후가 가장 왕성하며, 여자는 20대중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절정기. 이는 여성의 성적 능력 계발이 다소 느리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의 매력이 가장 꽃피우는 때가 20대 후반 무렵의 수태적령기이기 때문에, 연상이든 연하든 남성이 이쪽으로 몰려든다는 논리도 있다.
하지만, 현대의학 기술의 발달로 젊음 자체를 연장시킬 수 있는 시대다. 40대 가까운 아주머니도 20대 부럽지 않은 몸짱으로 인기를 날리지 않는가. 요즘 여성들은 겉모습만 봐서는 20대인지 30대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게다가 함께 늙어간다면 연상연하가 최고라는 것. 2001년 기준 평균수명은 남자 72.84세, 여자 80.01세. 함께 세상을 떠나고 싶다면 8살 연상연하가 알맞은 셈이다.
가부장제 VS 평등한 부부 관계 ― 연상연하의 사회학
연상연하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는 역시 페미니즘이다. 연상연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대등한 부부 관계를 지향하는 관계라는 주장이다. 가부장적 권위의 근간은 남성의 경제력과 나이. 그 관계를 역전시킨 연상연하 커플은 훨씬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짐을 나눠갖는 진정한 동반자적 부부생활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여기엔 물론 여성의 경제적 지위 상승이라는 사회적 변화가 깔려 있다. 실제 많은 연상연하의 커플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도 "훨씬 자유롭고, 서로가 편안하다"는 것이다.
무소불위의 사랑학
하지만 이런 저런 논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랑한다는데, 눈에 콩깍지가 씌였다는데 나이차가 무슨 상관일까. 모든 담론을 거부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아마도 저 무소불위의 사랑의 힘이 아닐까.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든든한 그녀, 씩씩한 그이
누나, 동생이 만난 연상연하 커플, 이젠 전혀 어색하지 않다. 자연스러운 러브 풍속도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아직 사람들은 미심쩍어 한다. 귀를 쫑긋 세우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그런 시선을 오히려 조롱한다. 솔직담백한 그들만의 러브스토리를 이제 들어보자.
큐피드의 화살 - "필이 꽂혔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예요"
직장인 최모(27)씨가 군에서 막 제대할 무렵이었던 1999년 5월. 다시 찾은 교회에서 낯선 여자가 눈에 띄었다. 이쁘장하면서 귀여운 외모의 그녀는 최씨(당시 22세)의 눈엔 또래거나 아니면 두세살 위쯤으로 보였다. 다른 또래 여자들이 모두 그녀를 '언니'라 부르는 게 이상하긴 했다. 그러나 사태를 깨달았을 때는 마음은 이미 쏟아진 물처럼 그녀에게 흘러든 후였다. 그녀 나이 10살 연상(당시 32세). 짐작조차 못했던 사랑은 이처럼 불현듯 찾아왔다.
최씨는 그녀에게 괜스레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날렸다. "너 자꾸 왜 그러니" "누나가 마음에 들어서 그래요." "난 이제 결혼할 사람 만나야 돼, 넌 스물 둘 밖에 안됐잖아" "저랑 결혼하면 되잖아요"
결국 신앙심이 깊었던 그녀는 풋내기 같은 최씨에게 "우리 그러면, 50일만 같이 기도해보자"고 제안했다. 힘들어 당연히 떨어져 나갈 줄 알았던 것. 최씨는 그러나 그녀와 함께 매일밤, 꼭 100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교회에 나갔다. '백일기도 정성'이 그녀의 자물쇠 같던 마음을 풀어헤쳤다.
그녀가 집안 막내였던 탓에 처형들이 부모뻘이고 처조카들의 나이가 더 많은 점 등 여러가지 걸림돌이 많았지만 지난해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최씨는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든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해 그 부분을 채워주고 변함없이 듬직한 모습을 보여주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그녀를 사로잡는 법 - "지성이면 감천.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죠"
네살 연하와 사귀고 있는 직장인 배소영(27)씨. 2002년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났던 그 아이는, 싹싹했던 성격 탓에 금방 친동생 같이 여겨졌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오래 전부터 누나를 좋아해 왔어요"라고 불쑥 화살을 날리기 전까지는. 농담일까 진담일까. 다른 친구를 통해 확인해 보니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 전우혁(23)은 이제 공익근무 중인데. 언제 제대해서 학교 다니고, 어느 세월에 자리잡을까. 여러 근심들이 스쳐 갔지만 심장은 두근두근 박동수를 높여만 갔다. "그래, 그런 건 당분간 잊자. 지금 놓치면 평생 후회할 지 모르잖아."
지난해말 결혼한 닥스클럽의 커플매니저 심선영(29)씨와 대학후배 김진권(26)씨 커플은 여자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섰던 경우다. 2001년 사귈 당시 대학동아리 선후배였다지만 직장인 심씨와 복학생이었던 김씨가 서로 만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후배에게 마음이 빼앗긴 심씨는 친구들을 활용해 자연스런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공략법이었던 것.
자주 만나면 정도 싹트는 법. 친구처럼 친해졌을 때 심씨는 "나랑 같이 살면 재미있게 해줄 수 있을텐데…"라며 넌지시 고백의 말을 던졌고 "저도 좋아요, 누나"라는 고대하던 대답이 날아왔다. 심씨는 "연상여자가 먼저 접근했다 거절 당하면 상황이 더욱 우스워져 대부분은 망설이게 마련"이라며 "하지만 자연스럽게 만나면서 조금씩 관심을 표현하고 자신의 매력을 보여준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연상연하 너도 한 번 사귀어봐
그녀들은 연하남의 어떤 면이 좋았을까.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여성 스스로가 젊어진다는 점이다. 20대 후반 여성이 남자를 사귄다면 대개 30대 초중반. 이미 아저씨 땟국물이 들기 시작한 나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20대 초반을 선택했다. "30대를 만나면 괜히 고급스럽게 놀아야 되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PC방이나 오락실 가고, 그렇게 놀아요. 여전히 20대의 싱싱함이 넘쳐나는 것 같아서 좋아요" (배소영씨)
게다가 연하남들이 유약하다거나 어리광을 부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한결같이 연하남을 좋아하게 된 동기는 "나이와 달리 성실하고 듬직했다"는 것이었다. 결혼했을 때도 가사일을 연하 남편들이 적극적으로 돕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젊은 남자들이 부인한테 일을 미루지 않잖아요. 같이 분담해서 하니까 한결 편하죠."(심선영씨)
연하남들은 또 연상녀들의 어떤 모습에 반한 것일까. 우선 사귈 때 대부분은 나이와 별개로 상대의 외모나 이미지, 분위기에 반했다. "여성답고 순수해 나도 모르게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전우혁씨). 세 살 연상과 결혼한 직장인 양상희(30)씨도 "귀엽고 깜찍해 접근했는데, 나중에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사귀고 난 후 남자 쪽에서 누리는 부수적 효과가 더 커 보인다. 전씨는 "애인이 직장에 다니니까 데이트 비용을 남자만 부담하지 않는 면도 좋은 점"이라고 말했다. 양씨는 "어린여자는 칭얼대고, 남자에게 너무 많이 의지하려는데 연상녀들은 오히려 남자를 많이 배려해줘 매우 편안하다"고 말했다. 열살 연상과 결혼한 최씨는 "아내가 사회경험이 많다 보니까, 미리 알아서 많이 챙겨주기 때문에 큰 도움을 받는다"며 "그렇다고해도 결국 리드는 남자가 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고민은 있죠
애교스런 고민이라고 해야할까. 젊은 남자와 사귀다 보니 연상녀들의 외모 관리는 평균 이상이다. 얼굴 마사지도 한번 할 것을 두번 하게 되고, 일부는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남편 친구들 모임에 나가기도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남편 친구의 부인들이 많게는 열살 정도 어린 경우도 있기 때문.
보다 실제적인 고민도 있다. "지금 아이를 낳아야 되는데 남편은 이제 갓 직장에 취업해 아이 갖는게 조금 이르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경제적으로도 내가 많이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 " (심선영씨)
이제 사귀는 단계인 배소영씨는 조금 더 막막하다. 어느 틈에 자신은 결혼할 나이에 다가가고 있지만, 남자친구는 아직 공익근무 중. "어떻게 할거냐"는 주변 친구의 말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언제까지 남자친구가 노는 건 아니잖아요. 자리를 잡을 때까지 제가 기다려야죠." 고민은 연상녀 쪽이 많은 게 현실이다.
연상연하의 대차대조표는 아무래도 연하남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인다. 이화여대 함인희 교수(사회학과)의 말도 그래서 실감있게 다가온다. "여자들로서는 대등한 부부관계를 갖게 된다는 것이 좋은 점일 것이다.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연하남들이다. 치열한 현대의 경쟁사회에서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오히려 남성들에게 큰 부담이라는 사실을 드디어 깨닫고 있는 것 같다. 한국 남성들이 이제 실용적인 솔직함을 선택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선우 이웅진대표
"미의 기준과 결혼 적령기에 대한 생각이 변하는 것처럼 남녀의 나이차에 따른 편견도 변하고 있어요. 요즘은 나이 자체보다는 사람이 지니는 분위기에 더 큰 비중이 실리는 추세입니다."
1997년 결혼정보회사 '선우'를 세워 3,000쌍이 넘는 부부를 결혼에 탄생시킨 이웅진 대표(아래 사진). 그는 "연상연하 커플의 급속한 증가는 남녀가 서로를 보는 방식이 변하는 것으로 사회 분위기와 맞물린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말했다.
근육질 남성보다는 미소년에 가까운 '예쁜' 남자가 각광 받고 여성의 적극성이 더 이상 흉이 아닌 세상인 만큼 여성의 나이가 많은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이다.
"90년대 말 방송에서 유행한 커플 맺기 프로그램과 결혼정보회사의 등장으로 여성도 적극적으로 이상형을 찾아 나서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반드시 남성이 프로포즈해야 할 필요성도 사라지고 여성이 부끄럽다는 이유로 '그의 연락'만 기다리고만 있어야 할 이유도 없어진 거죠."
이 대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에 더해 여성의 경제력을 중시하는 추세가 연상연하 커플의 증가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집에서 얌전히 살림하고 아이 키울 여자를 찾던 남성들의 생각이 180도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
맞벌이 부부에 대한 갈망이 높아지면서 여성의 경제력이 결혼 조건 1순위로 떠올랐고 사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 있는 전문직 여성들의 주가가 상한가를 치기 시작했다.
결혼 당사자는 물론 시어머니들까지 돈 잘 버는 며느리를 원하면서 대학을 갓 졸업한 어린 신부보다는 사회에서 한 자리 차지한 성숙한 여성의 인기가 치솟았다.
"이제 남자들은 '강하고 똑똑한 여자'를 곁에 두고 싶어합니다. 아내의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집에서 살림하겠다는 남자도 늘고 있는 지금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조만간 직업란에 '주부'를 쓰는 남성이 종종 눈에 띌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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