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당시 삼성이 한나라당에 채권 170억원과 현금 수 십억원을 추가 제공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선자금 수사의 큰 구도에 변화가 왔다.삼성 LG 현대차 SK 등 4대 그룹을 대상으로 한 수사는 '502 대 0'의 구도가 상당기간 지속돼 왔다. 수사 초기 이들 기업에 수사력이 집중됐고 기업 당 100억원대의 불법 대선자금 제공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그러나 이후 4대 그룹 수사가 답보 상태를 보이면서 수사의 초점이 롯데 한화 등 나머지 대기업과 몇몇 건설사 쪽으로 옮겨지는 듯했다. 이 때문에 검찰 주변과 재계에선 '4대 그룹은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삼성이 이미 드러난 152억원을 포함, 한나라당에 322억원+α라는 천문학적 불법 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삼성을 향한 검찰 수사의 향배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비중을 고려할 때 임직원 구속 등 극단적인 상황은 피해 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그러나 이젠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 비자금 조성 및 불법 대선자금 제공을 주도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의 핵심 임원들이 입국시 통보 조치되거나 출국금지 됐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이 검찰에 소환될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4대 그룹 가운데 비자금 출처가 아직 규명되지 않은 곳은 삼성, 현대차 두 곳 뿐이다. 실무자들이 출처를 함구한다면 오너 소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사초기 시중에 나돌던 '삼성 300억원 제공설'이 사실로 입증됐다는 점은 다른 기업들의 불법자금 규모와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삼성은 현금 40억원을 최돈웅 의원에게 전달한 뒤 곧이어 채권 112억원을 전달했다.
170억원+α의 전달 시점이 그 이전인지, 이후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쨌든 최소 3차례 이상 분산 지원했다는 결론이고, 이는 한나라당의 요청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 자금수요가 발생할 때마다 여러 차례의 '모금 대책회의'를 통해 기업별 요구액을 산정한 뒤 모금에 나섰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또 삼성에게만 3차례 자금지원을 요구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지금까지 드러난 LG 현대차 SK의 한나라당 지원은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들 기업의 추가지원이 새로 밝혀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검찰은 특히 현대차에 대해 수사가 계속되고 있음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노무현 후보 캠프측의 불법 대선자금이 아직 100억원에 못 미치는 반면 한나라당은 767억2,000만원+α로 증가함에 따라 '10분의 1' 국면도 예측불허로 접어들었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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