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경제사령탑에 등극한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정말 운좋은 사람일까, 아니면 억세게 운나쁜 사람일까. 경제관료라면 누구나 꿈꾸는 경제수장을 2대 정권에 걸쳐 두번씩이나 맡게 됐으니 그 관운을 부러워 할만도 하지만, 주변여건을 짚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그가 재경부 장관으로 처음 임명됐던 2000년1월은 16대 총선을 넉달 앞둔 때였다. 취임하는 순간 '구조조정의 전도사'는 사라졌고, 여권의 선거용 정책요구와 야권의 개혁실패 책임추궁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고 말았다. 선거가 야당의 승리로 끝나자 이 장관은 곧바로 국면전환용 경질대상 1호가 되었고, 야당은 물론 정부·여당 심지어 경제팀내에서조차 집중 견제를 받은 끝에 목소리 한번 제대로 못내고 7개월 만에 중도하차해야 했다.
두번째 경제팀장 자리에 오른 지금 역시 공교롭게도 총선이 2달 남짓 남은 시점이다. 여소야대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혼탁도는 당시보다 더 흐리다. 2000년초는 경기라도 확장국면이었지만, 지금은 실물·체감경기와 대외경제환경 모두 최악의 상황이다. 4년 만에 또다시 '선거철 경제팀장'이 된 이 부총리로선 임명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횡액이다"고 얘기한 것이 꼭 농담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시장엔 '이헌재 효과'가 형성되어 있다. 과대포장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바람에 배겨날 경제사령탑은 하나도 없다. 4년전처럼 여야 모두 경제를 정쟁의 볼모로 삼고, 경제팀 목숨은 선거결과에 달려있다는 시한부 인식이 시장에 퍼진다면 그 효과는 금세 소멸된다. 그것은 이 부총리 개인의 두번째 실패를 넘어, 한국경제의 좌절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성철 경제부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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