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이 점점 빨라졌다. 정해진 시간 안에, 새로 선보인 노래 그리고 14년 동안 해 온 음악에 대해 되도록 자세히 설명하려는 그의 모습이 열정적이다. 9집 'Ninth Reply'를 발표하고 14일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 콘서트를 여는 가수 신승훈. 그의 노래를 관통하는, 슬프되 슬퍼하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감성은 새 노래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사랑 노래 많이 부른 가수는?
그의 새 노래를 듣고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비슷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사랑 노래다. 무려 15곡이나 꽉 채워 담은 새 음반에서 신승훈은 또 사랑에 아프고 밤새 뒤척이지만 떠나는 연인을 붙잡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다. "어떤 노래 불러도 똑같다고 할 걸요?"라며 웃는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을 우등생, 저처럼 아무 변화 없는 사람을 열등생 취급하죠. 하지만 제 노래가 열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제 음악 색깔을 갑자기 바꿀 생각도 없어요. 저는 14년이나 이 스타일을 고수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 변함 없는 이미지는 쉽게 얻은 것이 아니다. 14년 동안 그는 CF 한 번 찍은 적도 TV 오락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민 적도 없다. 스캔들 기사 역시 그와 거리가 멀었다. 사람들이 '항상 똑같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고집스럽게 자신을 관리해 온 탓이다. "가끔은 제가 바보 같아요." 슬픈 노래 부르는 사람이 웃는 얼굴로 상품을 선전하거나 밤업소 출연하는 게 우스울 것 같아 그의 활동 무대는 방송국과 공연장이 전부다.
6집 때 벌써 누적 음반 판매량이 1,000만장이 넘었으니 돈도 많이 벌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난하다. "인세라고 해 봐야 한 장 당 100원, 200원 받는 게 전부였고…. 지금 사무실도 월세인걸요?" 하지만 그 고집이 14년 동안 정상의 자리에서 노래하는 신승훈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피드 퀴즈 있죠. '사랑 노래 많이 불렀던 가수?'라고 물으면 바로 신승훈이라는 대답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최고의 공연이 필생의 소원
신승훈에 대해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그가 뛰어난 작곡가라는 점이다. 지난 해 한 음악순위 차트지로부터 '1위를 가장 많이 한 가수와 작곡가'로 뽑히기도 했다. "음악을 시작했을 때부터 모델이 됐던 사람이 고 유재하 선배입니다. 그 분 음반을 보면 모든 곡의 작사 작곡 편곡자가 유재하잖아요." 하지만 그는 9집 타이틀곡 '그런 날이 오겠죠'를 작곡가 박근태와 함께 작곡했다. 1990년대 최고의 작곡가와 현재 최고의 인기 작곡가가 만났다는 점에서 화제다. "항상 똑같은 것 같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말을 증명하듯 '그런 날이 오겠죠'는 신승훈표 발라드 속에서 진행되는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물론 그의 발라드는 매번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던 예전의 파급력을 잃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자리를 애써 고수하고픈 생각도 없다. "제2의 신승훈, 제2의 김건모라는 표현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가요계가 90년대의 추억에 빠져 있는 것도 바라지 않고 90년대 스타를 능가하는 더 큰 신인이 나왔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죠." 그의 욕심은 음반 최고 판매량 경신이 아니다. "내 필생의 소원은 최고의 공연을 만드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이번 공연에는 큰 욕심을 냈다.
14일 서울 콘서트를 시작으로 전국 13개 도시를 도는 공연에 투입되는 장비는 5톤 트럭 50대 분량. 무대에서 먼 자리에서도 앞자리와 같은 음질로 노래를 들을 수 있는 'v―dosc' 방식까지 동원했다. 1,530억원이라는 사상 최고의 보험료가 그 무게감을 증명한다. "조용필 선배의 35주년 공연에 후배 가수로 함께 서면서 '가수의 끝은 이거구나' 했어요. 수 십년이 지나도 가수와 팬이 한 자리에 모여 추억을 공유하잖아요. 그 공연장이 제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연은 14일 오후7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1544―1555
/최지향기자 misty@hk.co.kr
― 결혼은 안 하나?
"프로필에는 68년생으로 돼있지만 실제로 나는 66년생이다.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다. 데뷔 초 기획사에서 68년생으로 발표해 버렸다. 누나, 여동생에 이어 얼마 전에는 남동생까지 결혼했다. 결혼 안 한 형은 식장에 들어 오는 게 아니라는 어른들 말씀 때문에 문 밖에서 지켜 봐야 했다. 사실 예전에는 음악과 여자에 대한 갈망이 99.99대 0.01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6대4? 아니 거의 5대5 정도다. '음악과 결혼했어요'라는 자세는 절대 아니다. 사귀는 사람은 없지만 결혼은 꼭 할 생각이다."
― 중국 진출은?
"사실 외모가 뛰어난 댄스 가수 위주로 중국에 진출하다 보니 '신승훈이 중국에?'라며 놀라는 분이 많다. 중국에서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인기를 끌면서 주제곡 'I Believe'를 부른 가수로 자연스레 알려졌다. 새 음반에 실린 '애심가'(哀心歌)는 사실 중국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가야금 연주를 삽입한 것도 한국적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다. 중국에서 가수보다는 프로듀서로 활동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시장을 얻기 위해서는 좀 더 큰 그림이 필요하다."
―서태지와 김건모에 대한 생각은?
"9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들이라 서로에 대한 평가를 해 달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서태지는 지금도 새로운 음악과 이슈를 계속 생산해 내는 것을 보면 존경스럽다. 건모는 예전에 같은 기획사(라인음향) 소속이어서 면모를 잘 안다. 예를 들어 김창환씨가 '핑계'를 만들었을 때 나는 "이 곡은 건모가 제일 잘 부를 수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요즘 잘 만나지는 않지만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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