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이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WMD)의 부재(不在) 사실을 인정하면서 더욱 뜨거워졌다. 궁지에 몰린 부시 대통령은 최근 울며 겨자 먹기로 이라크 WMD의 정보왜곡 가능성을 조사하는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가동키로 했다.이 논란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3월 전쟁을 시작하기 전부터 줄곧 음양으로 내연해 왔다. 다만 시기상 미국 대선 전에 다시 중량급 이슈로 부각함으로써 떼 놓은 당상처럼 보였던 부시 대통령의 재선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부시 대통령이 강행한 이라크전은 분명 잘못된 전쟁이었다. 그는 미국과 서방세계를 위협하는 이라크 내 WMD의 폐기와 사담 후세인의 폭정에 시달리는 이라크국민의 해방을 명분으로 이라크를 초토화했다. "이라크가 WMD를 폐기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는 내용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 1441조를 전쟁 수행의 근거로 내세웠다.
이 같은 전쟁의 명분과 근거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잘못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 WMD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부시 전쟁'의 정당성과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다. 지구촌의 테러는 오히려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라크 자유'라는 작전명으로 치러진 전쟁은 이라크 국민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3,000명에 가까운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9·11 테러로부터 파생한 이 전쟁에서 1만명이 넘는 이라크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는 유럽 민간단체의 집계도 최근 나왔다. 힘의 논리를 맹신하는 부시 대통령의 등장이후 나타난 지독히 모순적인 상황이다.
부시 대통령과 이라크전에 대한 비판은 국제적 현실을 외면하는 책상물림의 오기만은 아니다.
미국은 유일한 전지구적인 패권국가이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 이외에도 자유민주주의와 첨단 기술, 매력적인 문화의 전파력을 지니고 있는 경쟁력 있는 패권국가이다. 국제사회는 이 같은 미국의 패권에 자발적으로 참가해 안정적인 질서를 형성하고 있는 양상이다.
부시 대통령의 전쟁 강행은 이 같은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해 취해진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단 국제사회의 여론을 무시하고 군사력에만 의지하는 등 자국이 보유한 패권의 성격과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미국이 아무리 일극(一極)적인 패권국가라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자발적 참여가 없으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혼자만의 힘으로만 모든 걸 다하려 한다면 결국 미국은 자멸할 것이라는 것이 국제정치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미국은 매우 중요한 갈림길에 서있다. 11월 대선은 패권국가 미국의 일탈이 한때의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과거 실패한 제국들이 걸었던 일방적인 패권의 길로 접어들지를 가늠하는 선거이다. 이는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직결된 중대한 문제이다.
이것이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가 범한 시행착오를 국제사회가 가장 적은 비용으로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시 불거진 이라크 WMD논란이 부시 대통령의 대선 패배에 일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국제사회와 미국 국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시 낙선 운동'도 더욱 힘을 얻기를 희망한다.
마침 공화당 내부에서 부동의 대선 후보인 부시 대통령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김 철 훈 국제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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