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사회에는 '보수=수구기득권'이라는 이상한 등식이 있다. 분단체제와 산업화의 그늘에서 비롯됐을 텐데, 나는 그것이 고려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일방적 관점이라 생각한다." 10일 새 산문집 '신들메를 고쳐매며'(문이당 발행) 출간기념회에서 이문열(56)씨가 보수 논객으로 다시 한번 세상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먼저 자신의 보수 성향에 대해 "젊은 날부터 갖고 있던 입장이다. '다른 사람이 말할 때 내가 참았던 것'은 바로 그런 성향 때문"이라면서 "그랬던 것이 1980년대 후반부터 '적개심 서린' 발언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되던 과거에는 보수의 지분이 남아 있었던 게 사실이나 지금은 '순수―참여'의 명목상 대립마저도 없다"고 주장했다.'신들메를 고쳐매며'는 이씨가 '시대와의 불화' 이후 12년 만에 펴낸 산문집. 제1장에서 그는 DJ와 노무현 정권, 그리고 그 지지자들에 대한 비판의 글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는 책에서 '우리 사회에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망령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특히 '엘리트 리그에서 시드 재배정을 받지 못했던' 해외 유학파가 최근 '네거티브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들의 네거티브 대상으로는 서울대 출신이거나, 반(反)김대중, 친(親)영남 정서를 가진 사람 등을 꼽았다. 노무현 정권이 포퓰리즘을 정책이 아닌 정권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고 분석한 이씨는 "노 대통령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를 만든 세력의 비합리성과 악성을 비판한다"고 밝혔다.
책의 서두에서 문학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으면서도, 현실을 공격하는 이유를 "모진 말로 겨루겠다는 의도를 갖고 쓴 건 아닌데 말투가 격하긴 한가 보다"라며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내 어투가 격렬하고 표독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세상을 보고,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을 썼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공천심사 작업 참여하고 있기도 한 이문열씨는 "이미지를 쇄신하려면 자기방어적인 영입보다는 4년 뒤 살아남을지를 고려해 어떤 사람을 '날리는가'가 중요하다"는 소신도 피력했다.
"현대사의 모습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 할 얘기가 많은 1980년대를 소설로 형상화하고 싶다. 또 나이를 먹으니 여성이라는 존재가 물화(物化)·객관화한다. 여성과 사랑, 섹스를 주제로 한 소설도 쓰려고 한다. '여인들을 보내며'라고 가제목도 달아 놓았다"고 밝힌 이씨는 "문학에 잠기기로 결심하면서 귀향 혹은 칩거 선언이라도 해야 하는데 말이 먼저 나갔다. 새로운 논쟁이 벌어진다 해도 앞으로는 나 자신을 소모하지 않을 것"이란 말로 입을 닫았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