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낮술의 동기는 실의나 분노인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중독성 습관이거나 일종의 오락이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의 종사자일수록 낮술을 더 마시는 것 같다. 검찰의 경우 가끔 폭탄주와 낮술 금지령이 내려질 정도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언론계도 막강한 낮술사회다. 언론계를 조(操)고계(界)라 부르기도 하는데, 角과 瓜를 합친 고자는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글씨를 쓰던 대쪽을 가리키는 글자였다. 그러나 술잔 고자이기도 해서 술잔 잡는 사회라는 뜻이 자연스럽게 통용돼왔다.■ 누구의 시였는지 잊었지만, 낮술을 불칼의 이미지와 연결시켜 대낮의 분노를 노래한 것이 있었다. 낮술은 쉽게 분해되지 않고 코 끝에 걸린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의 '낮술은'에도 '낮술은 취하지 않는다/…/잠자는 기억을 들이받고/헝클어진 머리카락/하나 둘 엉겨 붙는다'는 말이 나온다. 반면 정현종의 작품 '낮술'에는 '밤에는 깊은 꿈을 꾸고/낮에는 빨리 취하는 낮술을 마시리라'는 대목이 있다. 두 시인의 진술은 상반돼 보이지만 모두 다 진실이다. 마시는 동기와 방법에 따라 낮술의 얼굴은 이처럼 서로 다를 수 있다.
■ 낮술로 어울리는 것은 역시 소주다. 제한된 시간에 일정한 음주효과를 내면서 돈도 덜 드는 것으로 소주 만한 것이 없다. 더구나 술 마실 일이 오히려 갈수록 많아지는 한국인들에게 소주처럼 좋은 술은 없다. 생필품이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지난해 한국인들은 29억병 이상의 소주를 마셨다. 1인당 61.1병 꼴이나 되는데 1년 전에 비하면 3병 가까이 늘어났다. 경기 침체와 불황 때문에 맥주와 위스키의 1인당 소비량은 줄어들었다. 금연열풍으로 줄었던 담배 소비량이 다시 전년보다 26% 늘어난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 지금보다 더 순한 소주가 나오면 소주 소비량은 앞으로 더 늘어나지 않을까. 소주업체들이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이달 하순부터 알코올 도수 21도짜리를 시판한다고 한다. 22도짜리는 이제 사라지게 됐다. 지방소주 중에서는 이미 1월에 도수를 낮춘 것도 있다. 1974년에 처음 나온 25도짜리와 비교하면 30년 만에 4도 낮아지는 것인데, 너무 싱겁다고 불평하는 술꾼들도 있을 것이다. 소주업체 사람들에게는 섭섭한 말이 될지 몰라도 소주를 마셔댈 일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물론 대낮에 술을 마시는 풍토도 달라져야 하겠지만.
/임철순 수석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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