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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왕전 결승진출 네팔人 복서 주피터/"사각의 링엔 차별도 멸시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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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왕전 결승진출 네팔人 복서 주피터/"사각의 링엔 차별도 멸시도 없으니까요"

입력
2004.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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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의 링 안에선 고된 노동도 없고 쫓겨날 이유도 없다." 10일 오전11시 경기 군포시 산본1동 안양광체육관. 얼굴에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힌 깡마른 체격의 외국인 파이터가 샌드백을 향해 무섭게 주먹을 날린다. 때에 절은 낡은 트레이닝복과는 어울리지 않게 눈빛이 매섭다. 마치 "I Can, I Can!(난 할 수 있다)"하고 외치는 듯 하다.주먹 하나로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네팔 출신 외국인 노동자 주피터(23·본명 슈레스터 라미쉬). 그는 13일 무주에서 개막하는 프로복싱 신인왕전 슈퍼플라이급(52.16㎏) 결승을 앞두고 맹훈련을 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그는 공장 허드렛일을 전전하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였다. 네팔의 일류대 암리트대학 생명공학과를 다닌 수재로 틈틈이 홀로 주먹을 다듬었던 그는 단지 돈을 벌겠다는 목표 하나로 지난해 2월 관광비자로 입국했다.

오전8시부터 12시간동안 쇠를 갈고 용접하며 날아드는 쇳가루가 기관지를 망쳤지만 꿋꿋이 버티었다. 그는 "옷 장사를 하는 부모님께 매달 조금씩 부쳐주는 돈이 유일한 낙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체육관 문을 두드린 것은 "챔피언의 꿈보다는 하루하루 쌓여가는 몸 고생, 마음 고생을 한방에 날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숨은 실력을 알아본 건 프로복서 출신의 이기준 관장이었다. 이 관장은 "며칠 지켜보니까 기량이 만만치 않아 신인왕으로 키우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그때부터 낮엔 선반공, 밤에 복서인 '주노야투(晝勞夜鬪)' 생활이 시작됐다. 월급 85만원 외에 푼돈이나마 모을 수 있는 특근 야근도 제쳐두고 줄넘기를 하고 샌드백을 두드리며 복싱에 매진했다. 목표가 생기자 힘든 것도, 불법체류 처지라는 사실도 잊었다. 사정을 안 이 관장이 매니저를 맡아 비자를 연장하고 취업을 도왔다.

그의 실력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말 신인왕전 예선전. 실력이 쟁쟁한 한국선수를 맞아 오른쪽 눈썹이 찢어지는 상처를 당했지만 특유의 반사신경으로 극복, 판정승을 거뒀다. 그는 서툰 한국말로 "마지막… 꼭 이기고 시포써요" 라고 말했다.

그는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이 돼서 관장님과 히말라야 여행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어려운 시절 그를 믿고 도와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꼭 신인왕이 되겠다는 게 네팔인 파이터의 출사표다. 사각의 링에선 승부를 향한 집념을 드러내는 그지만 글러브를 벗으면 유머가 넘치는 신세대다. "내 팔에 '네팔'이 달렸죠.??" 최신형 휴대폰을 가장 아낀다는 그는 승리했을 때 팬들에게 선사할 앙증맞은 우승 세리머니도 만들었다.

"자∼ 보세요." 주피터가 이 관장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함께 링을 빙그르르 돌았다.

/군포=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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