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소설가처럼 보이지가 않아."여행에서 만난 한 여자가 내게 말했다. 그 여자는 중국 훈춘(琿春)과 강원 속초를 오가며 물건을 사다 나르는 보따리상이었다. 일년 중 반을 배에서 보내는 그녀는 저녁식사 시간이면 조리실까지 쳐들어가 숨겨 놓은 반찬을 꺼내올 정도로 배의 생활에 익숙했다. 제한된 무게에 맞게 짐을 나누고 포장을 하는 그녀의 익숙한 손놀림과 억세고 쾌활한 성격을 보면서 나는 그녀가 정말로 보따리상 같다고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나더러는 소설가가 아니란다. 그녀가 생각하는 소설가란 조용히 사색하고 책을 보고 무언가 끼적거리고 있어야 했다. 보따리상들을 쫓아다니며 함께 놀고 떠드는 나는 그녀에겐 소설가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타고난 보따리상이니 함께 배를 타지 않겠느냐고까지 했다. 소설가는 태어나서 처음 만났다는 그녀에게 소설가답지 않은 모습을 각인시켜준 것 같아 나는 조금 미안했다. 소설 쓰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고, 그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소설 쓰는 현장이라는 것을 이해시킬 수도 없었다.
만약에 그녀가 배 안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무언가 끼적거리고 있었다면 나는 그녀를 보따리상답다고 생각했을까? 기업과 정치인을 생각하면 비자금과 비리가 먼저 떠오른다면 그것이 기업과 정치인다운 것일까? 과연 '…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두서 없는 생각을 하며 배에서 내렸다. "가짜 소설가님 그만 놀고 소설 좀 쓰시죠?" 그녀는 가끔 내게 전화를 해서 그렇게 말한다. 그녀의 전화를 받는 날이면 내가 소설을 쓴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소설가답지 않다는 것에 안도한다. 나는 가짜 소설가다. 그래도 소설을 쓰기는 쓴다. 그것이 정말 소설이긴 한 걸까?
천 운 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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