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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老鋪]<20> 우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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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老鋪]<20> 우래옥

입력
200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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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이 박인다.' 미식가, 특히 냉면 예찬론자들은 곧잘 이 말을 입에 올린다. 그 것도 특정 음식점의 맛에 길들여져 밥 다음으로 그 집 냉면을 즐겨 찾는 것이다. 다른 집 것은 아예 외면한다. 탐닉의 세계로 유혹하는 요소는 단연코 육수가 꼽힌다. 서울 중구 주교동 우래옥(又來屋)은 그런 냉면을 3대에 걸쳐 내놓는 업소 중 하나다. 그리고 그 맛을 해외에까지 전하고 있다.우래옥은 평양냉면의 전통을 온전이 고수하고 있다. 쇠고기 만으로 우려낸 육수에선 특유의 담백한 풍미가 그대로 살아나오고 면에서는 싱싱한 메밀 향이 느껴진다. 단골들은 그렇게 말한다. 달콤새콤한 맛에 길들여진 젊은 세대에게 그런 육수의 맛은 밍밍할지 모른다. 맛은 미각이면서도 주관적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냉면은 살아 있다." 우래옥의 창업자 고 장원일(張元一)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변치 않는 맛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가 만들어낸 표어였다. 평양에서 명월관이라는 음식점을 경영하다 광복 직후 월남한 그는 46년 현재의 자리에 우래옥을 창업했다. 그는 성공의 비결을 최상의 재료에서 찾았다. 우래옥은 그래서 창업이래 제분소와 정육점도 한 곳만 정해놓고 거래한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그의 마음에선 다른 생각이 싹튼다. 거창하게 말하면 한국음식의 세계화였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외아들(진건·桭建·81)에게 밝혔다. 고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진건씨는 교사의 길을 접고 부친의 바람을 실천에 옮길 계획을 세운다. 업계의 생리를 어느 정도 체득한 그는 67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진출한다. 첨병은 당연히 냉면과 불고기, 갈비였다. 당시 국내의 대기업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원목을 수입해 가공 수출하던 무렵이어서 자카르타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주재하고 있었다.

가능성을 확인한 진건씨는 미국으로 눈을 돌린다. 미국이민 바람이 거세게 불던 시기였다. 74년 로스앤젤레스를 시작으로 뉴욕(77년) 워싱턴(81년) 시카고(96년)에 차례로 우래옥 분점이 들어섰다. 뉴욕 분점이 궤도에 오르자 그는 할리우드의 스타들이 거주하는 고급주택가 베버리힐스에도 점포를 냈다. 진건씨는 72년 부친이 타계 한 뒤에도 해외진출에 전념하기 위해 본점운영을 부인에게 맡겼다. 그의 아들(근한·根韓·50)은 현재 대치동 분점을 운영하고 있다.

"우래옥은 반칙을 안 합니다." 본점의 전무 김지억(金枝億·72)씨는 영업방침을 그렇게 설명한다. 바로 창업자의 유훈이란다. 4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그는 감식관이다. 마치 궁중에서 수라상의 음식을 맛보는 기미(氣味)상궁처럼 손님에 앞서 매일 점심으로 냉면을 든다.

우래옥의 육수는 순수한 고기국물이다. 한우의 엉덩이살과 다리 안쪽살을 너댓 시간 푹 곤다. 냉면에 편육이 보통 너댓점 들어가 있으면 제대로 육수를 우려냈다고 할 수 있다. 메밀은 본래 끈기가 있는 식품이지만 열을 가하면 끊어져 면의 모양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국수를 만들 때 메밀가루에 결합제를 섞는다. 제일 좋은 결합제는 감자로 만든 녹말이다. 계절에 따라 메밀가루와 녹말가루를 섞는 비율이 달라진다.

우래옥의 냉면 값은 8,000원이다. 호텔을 제외하곤 대한민국에서 값이 제일 비싸다. 최상의 재료로 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김 전무의 말이다. 나이 지긋한 단골들은 그래서 "값을 제일 먼저 올리는 집이 우래옥이야" 라면서 투정아닌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냉면 외에 불고기 갈비 쟁반이 주요 메뉴다. 김치말이는 이 집의 별식이다. 육수와 물김치를 반씩 넣고 사리 밑에 밥을 깐 메뉴다.

초창기 주방장은 평양냉면에 정통한 요리사였다. 김씨로 알려진 주방장은 맛의 비법을 고스란히 주방식구들에게 전해주었고 후배들이 우래옥의 해외진출 때 큰 역할을 했다.

불고기에 냉면 한 그릇 먹는 것이 보통사람에게 '큰 호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중년 이상의 사람들에겐 그 것이 냉면을 먹는 방식이었다. 창경원이 서울대공원으로 옮겨가기 전만해도 4월 벚꽃철이면 우래옥은 북새통을 이루곤 했다. 벚꽃놀이를 마친 손님들이 줄지어 밀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새 건물은 88년 6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완공됐다. 그 전까지는 한옥 다섯 채에서 손님을 받았다.

냉면애호가들에게 면발을 가위로 자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소설가 최인호씨도 그런 마니아다. 사리를 한 입 물고 동시에 육수를 마시면서 면을 씹어야 진짜 맛이 나온다는 것이다. 면발을 이로 끊지 않고 이어지는 대로 계속 먹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이 집 육수에 인이 박인 사람들은 식초는 물론 겨자도 안친다. 그냥 육수를 들이키면서 "바로 이 맛이야"라고 내뱉는다. 우래옥의 고객층은 비교적 연령대가 높다. 그만큼 전통의 맛을 고수하고 있다는 반증일 게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대부분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 집을 즐겨 찾았다.

냉면은 가장 만들기 어려운 음식이라고 한다. 면이 알맞게 삶아져 끈기와 탄력이 살아있어야 하고 육수는 간이 딱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래옥은 '또 찾아오는 집'이라는 상호에 걸맞은 맛을 인정 받고 있다고 봐도 틀림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이기창 편집위원 lkc@hk.co.kr

도움말 김용범(소설가)

■단백질·아미노산 풍부한 겨울철 별식

평양냉면은 평양지방의 향토음식이다. 관서지방의 중심지인 평양은 들이 넓어 밭곡식과 과일이 풍성하다. 음식은 짜지도 맵지도 않은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이런 풍토에서 태어난 음식이 평양냉면이다.

평양지방에서 즐기던 냉면은 한국전쟁 뒤 월남민에 의해 전국에 퍼져 사계절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겨울철 이냉치냉(以冷治冷)의 별식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메밀국수를 무김치나 배추김치에 말아 돼지고기를 섞은 것을 냉면이라고 한다.

또 잡채 배 밤 돼지고기 편육과 기름 간장을 메밀국수에 넣은 것을 골동면이라고 한다'는 기록이 보인다. 더불어 냉면을 겨울철 시식으로 꼽고 평양냉면이 으뜸이라고 적고 있다.

골동면은 비빔냉면이다. 비슷한 말로 비빔밥을 가리키는 골동반도 있다. 골동(骨董)이란 말은 흔히 골동품을 가리키지만 원래는 여러 물건을 한데 섞은 것을 뜻한다.

메밀국수는 조선시대 궁중에서도 온면이나 냉면으로 말아 점심으로 들었다. 또 사례(四禮)중 하나인 관례(冠禮·성인식)가 끝난 뒤 주인과 빈(賓), 그리고 손님에게 간단한 요기로 내놓던 별식이었다. 조선시대 조리서 '음식지미방'이나 '주방문'에는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그냥 면(麵)으로 기록, 메밀국수가 널리 먹히던 음식임을 말해주고 있다. 당연히 주산지인 평안 함경 강원도에서는 메밀로 만든 냉면이나 막국수가 향토음식으로 발달했다.

메밀은 단백질은 물론 필수아미노산인 리신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또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만들고 혈관손상을 예방해주는 루탄 함유량도 많다. 루탄은 메밀국수를 삶는 과정에서 물에 많이 녹는데 냉면집에서 메밀국수를 삶은 물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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