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꾸민다고? 휴대폰이 통화만 잘되면 그만 아닌가." 서울 반포동에 사는 고등학생 김영주(17)군은 휴대폰에 쏟아 붓는 친구들의 정성이 이해가 안됐다. 얼룩덜룩한 페인트칠에 '큐빅'에 '릴레이'까지 박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번쩍이는 휴대폰이라니. 참다 못해 '그럴 돈 있으면 새 폰을 사라'는 충고도 했지만 친구들은 들은 척도 안하더란다. 휴대폰도 '데코레이션'이 중요하다나.세대 관계없이 즐긴다
어른들도 휴대폰 데코레이션에 관심이 많다. 김군도 이런 사실을 지난달 아버지의 생일 선물을 마련하면서 알게 됐다.
본래는 넥타이나 지갑 정도를 사려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주문이 나왔다. '예쁜 휴대폰 줄이 갖고 싶다'는 것이 김군 아버지의 뜻. 휴대폰 줄은 5,000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으니 용돈 절약의 희소식이다.
가족사진이 들어가는 팬던트 줄을 사드린다고 하니 반응이 시원찮다. "그런거 말고 요즘 유행하는 데코레이션 줄 있지. 그거 하나 사주라."
자기 취향에 맞춰 휴대폰의 외양을 치장하는 '휴대폰 데코레이션'이 대유행이다. 휴대폰에 대한 애착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것처럼 데코레이션 열풍에도 세대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신촌, 강남 등에는 지난해 후반부터 휴대폰 데코레이션 숍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전국에 300여개의 점포들이 성업 중이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데코레이션 용품은 스티커, 에나멜 페인트, 데칼(스티커), 케이스 등 1,000여가지다.
단일 아이템으로 많이 팔리는 휴대폰 줄만도 200가지가 넘는다. 형광줄, 아로마줄, 묵주줄, 순금 돼지줄 등등이다. 백화점에서는 구찌, 샤넬 등의 마크가 선연한 '명품줄'도 판매한다. 이런 명품줄 중에는 100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외모가 흉한 휴대폰도 예쁘게
휴대폰 데코레이션을 즐기는 사람들은 주로 몇 년씩 된 구형 휴대폰을 사용하는 알뜰족이다. 아무리 낡은 제품도 1만∼2만원 정도의 비용과 30분만 투자하면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휴대폰'으로 재탄생한다.
외부에 흉터가 심한 휴대폰은 흠집이 난 부분을 사포와 연마제로 깨끗이 닦아내고 매끈해진 바깥면을 광택 에나멜로 칠한다. 여기에 다양한 무늬의 데칼을 입히고 다시 투명 에나멜 코팅을 하면 기본 작업은 끝. 화려한 겉모습 만으로도 예술 작품이 연상된다.
데코레이션 마니아들은 고휘도 다이오드 램프, 릴레이 전구, 발광 안테나 등 갖은 부품을 이용해 휴대폰을 개조(튜닝)하기도 한다. 예컨대 휴대폰 머리 부분에는 고휘도 다이오드 램프를 달아 헤드라이트 기분을 내고, 붉은색 칠에 스포츠카 데칼을 입힌 다음 숫자판 사이사이에 초록색 네온 큐빅을 박으면 '페라리 휴대폰'이 완성된다.
직접 빛을 내는 장치들을 달려면 휴대폰을 뜯어 기판에 납땜질을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일단 기판에 손을 대면 고장이 나더라도 무상 수리(애프터서비스)를 못 받는다. 데코레이션 튜닝의 세계에 입문하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일본에서 시작, 한국에서 대유행
휴대폰 데코레이션의 유행은 일본에서 건너왔다.
휴대폰 마니아들의 '휴대폰 튜닝'의 경향과 여고생들의 휴대폰 액세서리 유행이 각각 국내로 넘어와 '휴대폰 데코레이션'으로 통합됐다.
2002년부터 국내에서 선보이기 시작해 지난해 본격적인 유행을 탔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20여개의 데코레이션 동호회가 조직되어 있다. 다음카페(cafe.daum.net)에만 해도 10여개가 있다. 이중 '핸드폰개조-나만의 핸드폰 만들기' 카페(onlyonephone)는 21만여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나이스폰(www.nicephone.co.kr), 한국리텍(www.handphonetuning.co.kr) 등 휴대폰 데코레이션 프랜차이즈 업체도 등장했다. 데코레이션 입문자들을 위한 안내서도 출간됐다. '핸드폰 튜닝 길라잡이'(컬쳐코리아), '세상에서 딱 하나뿐인 핸드폰 만들기'(영진닷컴) 등이 많이 읽히는 책이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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