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선거의 계절이다. 4·15 총선까지는 2개월 남짓 남았지만 이번 선거에 사활을 건 정치권의 움직임은 14개월 전에 치러진 대통령선거를 뺨 칠 정도로 호전적이고 살벌하다.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함께 대통령을 타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에 맞선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각료 총동원령이라도 내려 선거에 '올인'하겠다는 자세다.선거철의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경제부처 마다 선심성 정책 발표가 부쩍 늘었다.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의식해서인지 올해는 일자리 대책이 단골 메뉴다. 선봉에 선 부처는 재정경제부다. 기업이 직원을 고용할 때마다 세금을 깎아줘 3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 엊그제 발표의 골자다. 정보통신부도 4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정보기술(IT) 분야에서 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노동부의 실업대책 15만개와 일자리 창출 5만개까지 합치면 올해만 모두 50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얘기다. 보고대로라면 청년실업 문제는 연내 해결되는 셈이다. 아직도 임시직 일자리도 찾지 못해 발을 구르는 취업자들이 들으면 가슴을 칠 노릇이다.
선심성 정책이 어디 이 뿐인가.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 한국전력공사 등 15개 공기업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신규 채용 광고를 내고 총선 전에 채용시험을 보기로 한 것도 대표적인 전시 행정이다.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공기업들이 청년층 표를 겨냥해 속 보이는 일을 한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고령자와 퇴직자들이 가입하는 저축상품에 세제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 역시 조세감면 축소라는 대원칙을 허무는 선심성 정책이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수를 2008년에 180만명으로 확대하겠다는 발표도 예산의 뒷받침 없는 공약(空約)의 혐의가 짙다.
최근 들어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는 그린벨트 해제 등 토지규제 완화조치는 또 어떤가. "정부가 나서 아파트 투기 대신 땅투기를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쓴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닐 것이다.
청년 노년 빈곤층을 겨냥한 선심성 공약 못지않게 경제 관련 장관들이 선거에 차출되는 빗나간 관행도 큰 문제다. 거론될 때마다 정치에는 뜻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던 김진표 경제부총리의 출마가 확정됐고 권기홍 노동부장관도 사표를 내고 지역구로 나갈 것이라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새해 벽두 "올해를 경제 살리기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경제 총수를 정치적 소모품처럼 선거에 동원하고 표를 의식해 설익은 정책을 무더기로 내놓는 것이 경제 살리기의 해법은 아닐 것이다.
경제부총리를 선거에 동원한다고 해서 승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지난 정권에서 경험한 일이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국민의 정부 시절 막판에 등을 떠밀려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섰다 고배를 마신 아픈 기억이 있다.
이제는 발상을 바꿔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는 것은 가뜩이나 빈사 상태인 한국경제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원칙을 존중하는 정공법 밖에 다른 길이 없다. 급조된 정책은 두고두고 경제에 짐이 될 뿐이다. 경제를 생각한다면 경제 장관들이 경제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 선거철마다 편협한 정치적 계산으로 경제장관들을 정치바람 들게 해서야 어디 경제가 살겠는가.
이 창 민 산업부장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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