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과 이라크 추가파병 동의안이라는 두가지 국가현안을 처리하려던 9일 국회 본회의는 또다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의원들은 국익보다는 총선을 앞둔 이해 관계만을 앞세웠고, "국가적 현안의 조속한 처리"를 공언하던 각 당 지도부도 사실상 표 단속에 손을 놓았다. 결국 국회 본회의는 9시간여에 걸쳐 '코미디'같은 장면들만 잇달아 보여준 채 밤10시50분께 산회했다.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려던 본회의가 투표방식에 대한 논란 때문에 정회된 시각은 밤9시12분. 박관용 의장은 의장실로 4당 총무들과 '농촌당' 의원들을 잇따라 불러 의견을 구했고 이때부터 의원들 사이에선 유회 가능성이 점쳐지기 시작했다. 투표방식이 기명투표로 정해지면서 "지금 표결하면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위기감을 느낀 각 당 지도부와 "유회만 시키면 된다"는 농촌당 의원들 사이에는 이심전심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대기하던 의원들도 하나 둘 의사당을 떠나기 시작했다. 결국 박 의장은 1시간30여분이 흐른 뒤 "정부측과 더 협의해보자"며 산회를 선언했고, 본회의장에서 기다리던 김진표 부총리는 "지금까지 짜낼 것은 다 짜냈는데"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앞서 각 당 의총이 격론 때문에 늦어지는 바람에 오후 4시가 돼서야 개회된 본회의에 FTA비준동의안이 상정된 시각은 오후 6시. 이날 찬반토론을 신청한 의원은 17명이나 됐다. 도·농으로 갈린 의원들은 경청하는 이 없는 회의장에서 의사진행방해를 겸한 '총선용' 찬반 토론 릴레이를 3시간 가까이 이어갔다.
찬성 쪽엔 안영근 유시민 임종석 의원 등 열린우리당 의원 3명만 나섰고, 반대 토론엔 윤한도 이인기 이규택 송광호 김일윤 김용균 이방호(이상 한나라당) 이용삼 장성원 배기운 황창주 이정일 이희규 (이상 민주당) 의원 등 각 당 농촌출신 의원 13명이 바통을 주고 받았다. 도시출신 민주당 추미애 의원도 반대 토론 대열에 섰다. 찬성토론에 나선 의원들은 "무역으로 커온 나라가 FTA 하나 체결하지 못하면 국제사회의 외톨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반대 토론자들은 "대책이나 비전 없이 FTA를 체결했다가는 몇 년 후 한국에서 전답이 사라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찬반토론이 끝난 뒤 국회는 투표 방법을 두고 투표를 벌인 끝에 '기명투표'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한나라당과 우리당 등 각 당 지도부가 '무기명 비밀투표'를 관철시키겠다고 했지만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은 결과였다.
본회의 개의 전까지 각 당은 찬·반 당론은 물론, 투표방식도 결정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한나라당은 두 안 모두 찬성 당론을 정했지만 여야 농촌출신 의원 18명은 오전에 회동, "무기명 투표를 강행하면 물리력으로 저지하겠다"고 결의했다.
민주당은 조순형 대표가 두 안건의 처리를 의원들에게 주문했지만 파병안 반대 주장에 막혀 반대 당론으로 돌아섰고, 우리당도 파병안 처리 유예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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