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났는데도 찬 기운이 거셉니다. 정월대보름에 부럼을 깨물며 한 해의 더위를 팔고, 오곡밥이나 대보름나물도 드셨는지요. 대보름에 먹는 나물은 대부분 묵나물이 많습니다. 취나물, 고사리, 시래기 등은 모두 지난해에 따서 말려두었던 것을 다시 물에 담궈 부드럽게 하여 무쳐 먹습니다. 예전에는 음력 정월에 이런 묵나물 외에는 푸른 잎을 구경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묵나물이 있었기에 부족하기 쉬운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었는데 사실 묵나물만이 갖는 독특한 맛도 있습니다.냉이는 이런 어려운 시기가 지나 언 땅이 녹을 때 돋아나는 대표적인 봄나물입니다. 묵은 잎이 아니라 새잎인 것이지요. 냉이의 향기는 생각만 해도 그윽하게 느껴집니다. 결각이 심한 잎새들이 방석처럼 둥글게 펼쳐져 있고 그 사이에 가녀린 줄기가 나와 희고 작은 꽃송이들이 매달립니다. 이 냉이의 겉모습은 동정심을 유발할 만큼 여리지만 삶 자체 만큼은 강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냉이는 토종식물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아주 오랜 옛날로 거슬러 가면 이 땅에 절로 자라지 않았답니다. 농사짓는 문화의 전파와 함께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따라 들어 왔고, 다시 일본으로 퍼져나갔지요. 지금은 전세계에 살고 있는 식물이 되었습니다.
그 저력은 우선 열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름 봄에 흰 꽃이 피었다가 지고 나면 그 자리엔 거꾸로 매달린 삼각형의 열매가 달리지요. 줄기가 자라면서 꽃은 계속 피어 가고 먼저 꽃핀 자리에는 열매가 익기를 한동안 계속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1㎡의 면적에 약 100포기의 냉이가 서식할 경우 거기서만 만들어지는 열매의 수가 4만개에 이르고, 씨앗의 수는 120만개에 달한 답니다. 가는 냉이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 많지요.
더욱 놀라운 것은 냉이는 환경이 나쁜 곳에선 잘 자라지 못해도 오히려 열매는 열심히 맺습니다. 그 결과 비옥하거나 척박한 곳이나 이 씨앗의 생산력은 비슷하다고 하니 어려움을 어려움으로 생각하지 않는 식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냉이는 두해살이풀입니다. 하지만 기후에 따라 좀 다르지만 조금 따뜻한 곳에 가면 늦은 봄이면 이미 열매를 맺고 어떠한 계기로 씨앗에 볕이 들고 해서 싹을 틔워, 둥글게 모여 달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잎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겨울을 나는 것이지요. 일생의 반 이상을 이렇게 고난의 시기를 보냅니다. 대신 봄이 왔을 때, 준비해 더 빨리 싹을 올릴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이런 잎의 포기가 크면 클수록 이듬해 더욱 튼튼하고 좋은 포기를 만들 수 있답니다. 웬만하면 추위와 만나는 부분을 작게 만들어 피하고 싶을 만 한데 냉이는 온 몸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약해 새봄의 주인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자란 냉이는 넉넉하게 퍼져나가 봄의 입맛을 돋우는 향기로운 봄나물이 되기도 하고, 간이나 고혈압에 약이 되기도 합니다. 이 추위가 가고 나면 남쪽에서는 냉이를 찾아 이른 봄나들이를 한번 계획해 보십시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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