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림 지음 문학동네 발행·8,500원
한동림(36·사진)씨가 첫 소설집 '유령'을 출간했다. 등단 9년 만이다. 그는 소설가 한승원씨의 장남이고, 소설가 한강씨의 오빠다. 작품에 앞서 가족사로 잘 알려진 그의 창작집 소식이 늦었다.
그럴 법도 하다. 책에 묶인 단편들이 깊은 성찰을 통해 힘들게 길어올린 주제 의식을 갖췄다. 한 편 한 편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 짙다.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 의해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남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는 행위의 반복이야말로 내가 살아온 삶의 전부"라는 작가의 말에 왜 소설을 쓰는가에 대한 답변이 담겼다. 한씨에게 소설은 '기억하기'다.
그 기억이 대개 죽음에 대한 것이며, 그것도 사랑과 증오가 겹쳐지는 사람을 대상으로 삼는 데서 그의 소설의 무게를 가늠할 만하다. 표제작 '유령'에서 인숙은 어머니에게 다가온 죽음에 두려워하고, 그런 인숙을 보면서 진형은 할머니의 죽음에 관한 기억을 떠올린다.
할머니 장례식 가는 길에 낯선 여자와 정사를 벌일 만큼 죽음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힘겨워했던 진형은, 화장실에서 본 할머니의 유령을 뒤늦게 떠올리면서 삶과 죽음을 함께 긍정하기로 한다.
'귀가'의 화자는 퇴근길 버스에서 만난 모자(母子)를 보면서, 죽은 어머니와 형을 기억한다. 불구인 형에 각별한 애정을 쏟는 어머니를 증오했던 화자가, 실은 그 증오가 어머니에 대한 구애였다며 마른 울음을 토하는 장면은 비로소 죽음을 껴안는 몸짓이기도 하다. '빛바랜 흑백 사진 속의 새벽 새'에서 현재 화자를 유혹하는 여자는 죽어버린 하룻밤 연인을 떠올리게 하고, '조난'에서 눈보라 속에 조난당한 주인공의 처지는 등반하다 죽은 선배를 떠올리게 한다.
죽음의 기억을 짚음으로써 삶에 대한 의지를 찾아내려는 작가의 노력은 소설집 전체에서 일관된 것이다. 그 의지는 아직 힘있게 묘사되기보다는 희미하게 비추어진다. 실체로서의 삶이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질지, 한씨의 다음 작품에서 기대되는 부분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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