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1시45분께 안풍 사건 항소심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한나라당 강삼재 의원은 빗발치는 기자들의 질문에 비장한 표정으로 "법정에서 말하겠다"고 짧게 말한 뒤 404호 법정으로 향했다.변호인이 안풍 자금의 출처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고 밝힌 뒤 지난 4차 공판에서 강 의원은 "시간을 달라"며 '폭탄 발언'이 임박했음을 암시했었다. 이날 공판이 시작되자 재판부는 안기부 계좌추적 자료에 대한 의문점을 지적한 뒤 바로 강 의원에게 발언 기회를 줬다. 강 의원의 '폭탄 발언'여부에 주목해 법정에 몰려든 취재진과 방청객은 물론 강 의원에게 "사실을 밝힐 준비가 됐느냐"고 묻는 변호인도 긴장된 모습이었다. 강 의원이 차분하게 "밝히겠다"고 하자, 재판부는 물론 법정의 모든 시선이 강 의원의 입으로 집중됐다. 변호인은 준비한 듯 "돈이 누구에게서 나온 것이냐"는 질문으로 폭탄 발언을 유도했고, 강 의원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서 직접 받았다"고 작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강 의원은 이어 10여분 간 1심에서 중형이 선고된데 따른 충격, 정계 은퇴를 선언한 소회, 정치적 신의와 역사적 배신 행위 사이에서의 갈등 등 개인적인 심경을 토로하면서 심지어 "(자살한)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과 안상영 부산시장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진술을 마친 뒤에는 자신의 발언이 몰고 올 파장에 정신이 아득해 진 듯 피고인석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변호인이 "당 총재인 대통령이 장만한 돈을 사무총장으로서 당을 위해 받은 것은 잘못이 아니지 않느냐"고 물으며 반대신문을 이어갔지만 "네"라고 답하거나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러나 변호인 신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이 강 의원의 발언에 반발하며 날을 세웠다. 김 전 차장은 우선 "강 의원이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포문을 연 뒤 "여당이 돈도 없고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로 총선에서 과반수를 넘기 힘들 것 같아 내가 독자적으로 자금을 투입했다"며 기존 주장을 강조했다. 또 "대선 후 김 전 대통령은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만 대선에 안나왔어도 돈이 별로 안들었을 텐데, 이렇게 돈이 많이 들다간 나라가 망할 것 같다'며 주변에 '절대 돈 받지 말라'고 주문했다"며 김 전 대통령측을 적극 옹호했다. 두 사람은 공범으로 함께 기소됐지만 이날 공판에서는 정반대의 진술들을 쏟아냈으며 법정에 긴장감이 감돌 정도였다.
한편 공판 시작 전 "강 의원 때문에 선거사범으로 징역을 살았다"는 서모(50·여) 씨가 법정에 들어가는 강 의원의 뺨을 때리고 강 의원 수행원들이 서씨를 폭행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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