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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25>新民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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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25>新民黨

입력
2004.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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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2월7일 민중당과 신한당 두 보수 야당이 통합해 신민당을 결성했다. 신민당 창당은 그 해 치러질 제6대 대통령 선거와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이 단일대오를 꾸리기 위한 것이었다. 통합 야당 신민당의 대표는 민중당 출신의 유진오가 맡았고 대통령 후보는 신한당 출신의 윤보선이 맡았다. 두 당의 이해 관계를 조율하기 위해 이른바 대권 후보와 당권을 분리한 것이다.우리 정당사에서 신민당이라는 이름을 지녔던 정당은 또 있다. 1960년 4월혁명의 결과로 집권당이 된 민주당의 구파(舊派)가 국무총리 지명을 둘러싼 신파(新派)와의 드잡이에서 패배한 뒤 당을 뛰쳐나가 그 해 12월14일 창당한 신민당이 그것이다. 김도연을 대표로 한 이 정당은 반년간 제1야당 노릇을 하다가 1961년 5·16 군사반란으로 해산됐다. 또 제5공화국 시절인 1985년 1월18일 정치 활동 규제에 묶여 있던 김영삼·김대중의 실질적 주도 아래 창당된 신한민주당도 신민당을 그 약칭으로 삼았다. 그러나 보통 신민당이라고 하면 1967년 오늘 창당된 이래 제3·4공화국 내내 제1야당으로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맞섰던 정당을 가리킨다.

신민당의 뿌리는 해방 직후 토착 부르주아와 지주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한국민주당(한민당)이다. 신민당은 제6대 대통령 선거에 이어, 김대중을 후보로 내세워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1969년에는 박정희의 공화당이 발의한 3선개헌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자동 사실을 노리고 당 해체를 결의했다가 두 주만에 다시 창당 절차를 밟아 원상을 회복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신민당은 박정희 암살 뒤 정권 찬탈을 노린 신군부에 의해 해산됐으나, 그 인적·이념적 정체성은 제도권 민주화 운동의 흐름 속에서 오늘날의 민주당·열린우리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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