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 지음 휴머니스트 발행·각 권 1만4,000원
흔히 문화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그것이 탄생한 배경과 의미, 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만이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토도 마찬가지다. 그 땅에 스며든 선조들의 고귀한 피와 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모를 때 그저 산은 거기 있는 것이고, 물은 흘러가는 것일 뿐이다.
재야 문화사학자 신정일(50) 황토현문화연구소장은 25년간 우리의 산하를 걸어다니며 그 안에 오롯이 담긴 이야기를 하나하나 끌어내 다듬고 있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등 5대 강과 수백 개의 산을 오르내리며 1,000여 회의 답사여행을 다닌 그가 이중환(1690∼1756)의 '택리지'를 다시 썼다. 한국 인문지리서의 백미이자 문화유산답사기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이 나온 지 250여년 만이다.
'택리지의 수천 마디의 말은 사대부가 살만한 곳을 구하려는 것'(성호 이익)이라고 한다면 '다시 쓰는 택리지'는 이중환을 스승 삼아 산과 강, 그 길을 오갔을 선인들의 숨결과 흔적을 찾아 어루만지려는 것이다.
신씨는 '택리지'뿐 아니라 '동국여지승람' '삼국유사' 등 고서와 현대문학을 동원하고, 오늘날 주변에서 떠도는 얘기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예컨대 '부여, 그 새벽의 땅'에서 부여는 '아름다운 슬픔의 땅'으로 그려진다. 그는 " '날이 부옇게 밝았다'는 말에서 나온 부여는 나당연합군의 침략으로 아침의 평온이 깨졌다. '동국여지승람'은 당시의 모습을 '집들이 부서지고 시체가 우거진 듯하였다'고 기록했다"고 전한다. '백제, 이곳이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거름을 남기는 곳. 금강, 예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기는 곳'이라고 노래한 부여 출신 신동엽의 시도 인용한다.
"염리동에 많이 살았던 소금장수들의 흔적은 없고, 보름 동안은 물맛이 짜고 보름 동안은 달았다는 보름물(염리동에 있던 우물)도 사라진 지 오래다." 작은 고개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진 '애오개',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가던 길에 팥죽을 말 위에서 먹고 갔다고 하여 붙여진 '말죽거리' 등 지명에 얽힌 사연도 흥미롭다. 저자가 몸서리치도록 사랑한다는 아름다운 산하와 그 길을 한발 한발 걸으며 기록한 내용을 읽다 보면 우리 땅에 담긴 애환이 되살아난다.
신씨는 "인문지리는 최소 50년 단위로 기록돼야 하는데 우리는 그 전통이 단절됐다"면서 "산다는 것은 떠돈다는 것이고 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라는 선인의 말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길 위에서 한 세상 떠돌다가 어느 날 가리라 마음먹었다"고 말한다.
전 5권으로 예정된 이 책은 '택리지'의 체제를 따라 '경기·충청편'(1권) '전라·경상편'(2권) '강원·함경·평안·황해편'(3편) 등으로 '팔도총론'을 삼았으며 곧 나머지 2권도 나올 예정이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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