귄터 그라스 지음·이수은 옮김 민음사 발행·1만6,000원
섹스는 세계가 가하는 죽음의 위협에 저항하는 인간의 방식이다. 세계와 섹스. 모든 예술이 나아가는 길은 이 두 가지로 모아진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 막 섹스를 마친 남녀가 있다. 얼마 전까지 서로의 몸을 탐했던 입술로 전쟁과 인종차별과 노동 문제를 토론한다. 알몸을 누인 침대에서 몇 발짝만 나가면 피투성이 세상이다.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77·사진)의 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는 전쟁터 한복판에서 섹스하는 현대 인간의 기이하고 슬픈 광경을 노래한 것이다. '짐승처럼 우리는 서로를 맛보았다/ 그러고 나서 발견했다,/ 지치고 만족해서,/ 서로를 맛보았던 그 혀로/ 서로에게 세계를 설명해줄 공손한 단어들을,/ 휘발유 가격의 폭등과/ 연금 제도의 문제점과/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 4중주의/ 난해함을.'
귄터 그라스의 시집 '라스트 댄스'가 출간됐다. 그는 장편소설 '양철북'과 '넙치' 등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소설을 쓰기 전 시를 썼고 대학에서는 판화와 조각을 공부했다. 그의 다기한 예술적 재능은 난해하고 묵직한 소설보다는 시에서 오히려 화려하게 피어난다. 직접 그린 수채화를 실은 첫 시집 '글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을 위한 습득물'(1997)을 느지막이 펴냈고, 지난해 낸 두번째 시집 '라스트 댄스'에서는 목탄과 연필, 붉은색연필로 그린 그림을 힘있는 시편과 함께 선보였다.
춤추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남자가 없는 전쟁통 여자들의 손에 끌려, 그라스는 열서너 살 적부터 춤을 배웠다. 시집의 그림에서 남녀는 긴 드레스와 정장 차림으로 몸을 겹치고 엉켜서 춤춘다. 래그타임과 블루스, 왈츠, 탱고, 슬로폭스의 아름답고 열정적인 몸짓이 시로, 그림으로 분출된다. 이 남녀들이 옷을 벗고 섹스를 하기 시작한다. 성애의 다양한 장면에서 사람들은 그러나 환희에 차 있지 않다. 슬프다. 작가는 시에서 벌거벗은 몸을 섞는 남녀의 얼굴이 왜 그토록 허무하고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지를 알린다. 그들이 섹스하는 세상은 젖먹이와 옆집 개도 가리지 않고 포탄을 떨어뜨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옆집 빵가게 주인에게, 제복 입은 청년에게/ 넷째 아이를 밴 부인네에게/ 너무나 많은 아이들에게, 춤을 청하며/ 손을 내밀었지./ 그러나 어떤 팔도, 어떤 다리도/ 움직이려 하지 않네.'('옛 멜로디에 맞춰'에서)
그라스는 통일 이전의 독일, 유럽의 현실의 그늘을 지적하고 한국의 독재정권 비판에도 앞장서는 등 사회참여 의식을 발휘해온 작가이기도 하다. '신의 명에 따라' 이라크전쟁을 수행한다는 부시 미국 대통령('옛 멜로디에 맞춰'), '검둥이로서 자신의 역할을 기어코/ 흰색보다 더 희게 만드는 일'을 하는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밀리터리 블루스')을 비난하는 시편들은 그런 그라스답다.
가톨릭 신자로서 고해소에 갔던 경험을 옮긴 '어느 상습범의 절반만 진심인 참회'는 시로 쓴 그의 자서전이다. '나를 현재에 헐값으로 팔아치우고/ 과거의 젖을 짰다, 외상으로 미래를 샀다./ 그렇게 나는 빈곤을 처치하고, 부자들 중 하나가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나는 입상(立像)이 되어 도처에 전시되었다/ 나 자신을 내게서 빼앗아 세계의 소유물이 되어/ 흔들리는 단 위에 박혀 있었다'는 게 그가 돌아본 한 생애다. 세속적 명성이란 것에서 비루함을 붙잡아내는 작가의 냉정한 자기반성에 숙연해진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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