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정벌레의 매력은 다채로운 색과 모양에 있습니다. 또 알록달록한 색깔은 물론, 기린처럼 길다란 목이나 커다란 턱, 기이하게 뻗어있는 뿔 등은 볼수록 묘하고 아름답습니다. 공룡시대인 2억4,000만년 전부터 지구환경에 적응해온 위대한 생존의 비밀이 들어있는 것이죠."한영식(30·회사원)씨는 딱정벌레만 10년 넘게 채집하고 연구한 마니아다. 대학(강원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할 때부터 딱정벌레에 빠진 그가 그 동안 산과 들을 쏘다니며 축적한 자료를 모아 '딱정벌레 왕국의 여행자' (사이언스북스 발행·2만2,000원)를 냈다. 딱정벌레 관련 개설서로는 국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약 200여종의 딱정벌레에 대한 습성은 물론 채집법과 사육법 등을 후배가 찍은 아름다운 사진들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한씨는 딱정벌레를 '작지만 가장 완벽한 동물'이라고 표현한다. "딱정벌레는 열대사막부터 극지의 동토까지 인간이 살 수 없는 지구 구석구석에 퍼져 살 만큼 경이로운 신체구조와 생활방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딱정벌레가 환경 적응력이 뛰어난 이유는 튼튼한 외골격을 가지고 있고, 번식력이 뛰어나며, 변온동물이라 영하 20∼30도에서도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딱정벌레가 기후와 서식지에 따라 종류도 다양한 만큼 특이한 것도 많다고 소개한다. "산 길을 가다 보면 '아이누 길앞잡이'를 쉽게 만날 수 있어요. 걸어가는 사람 앞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날아가 앉아있어 마치 길을 안내하는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죠."
"동물의 사체를 찾아 다니는 송장벌레와 반날개는 법의학에서 숨진 시간을 추정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사체 부패정도에 따라 꼬이는 벌레의 속성을 이용한 것이죠." 이밖에도 위험에 처했을 때 썩은 고기 냄새를 풍기는 폭탄먼지벌레, 두 달 동안 아무 것도 먹지않고도 살 수 있는 왕바구미, 진딧물을 잡아먹어 '살아있는 농약'이라고 불리는 칠성무당벌레 등도 학자들에게는 진귀한 연구대상이라고 한다.
채집여행을 즐겨 떠나다 보니 곤충과 얽힌 잊지 못할 일화도 많다. "한번은 밤 중에 반딧불이를 채집하던 중 잘 익은 산딸기를 발견했어요. 배가 출출하던 차에 정신없이 먹었는데, 달콤한 맛 뒤끝에 비릿한 맛이 느껴졌습니다. 손전등으로산딸기 넝쿨을 비춰보니 그 위에 노린재들이 모여 있었어요. 냄새가 매우 역겨운 이 벌레를 먹고 뒤집어지는 속을 달래기 위해 밤새 물로 입을 헹구고, 음료수를 들이켰죠."
한씨는 "딱정벌레 중에는 농작물 열매나 줄기를 갉아먹는 해충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해를 끼치지 않는다"며 "생존력이 뛰어나 사육병에 발효 톱밥만 넣어주면 얼마든지 키울 수 있으니 애완용으로도 그만"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왕성한 번식력과 끈질긴 생존력을 자랑하는 딱정벌레도 무분별한 환경개발과 남획으로 하나 둘씩 사라진다"며 아쉬워했다. 광릉수목원에서 흔하게 발견됐던 장수하늘소는 멸종위기이고, 시골에 지천으로 깔렸던 물방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딱정벌레가 살 수 없는 세상은 그 어떤 것도 살기 힘들다는 것, 오늘의 환경오염 문제에 대한 무서운 경고입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 딱정벌레는
동물계 절지동물문 곤충강 딱정벌레목에 속하는 곤충. 현재까지 분류된 것만 35만종으로 동물계 전체의 30%에 이른다. 곤충의 특징인 여섯 개의 다리를 갖고 있으면서 등껍질이 딱딱한 것은 모두 딱정벌레로 보면 된다. 몸집이 작은 무당벌레부터 애완용으로 각광받고 있는 사슴벌레, 장수풍뎅이를 비롯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장수하늘소(218호)와 애반딧불이(322호)도 여기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1만∼2만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까지 3,000여종이 확인됐다. 일본에서는 시장규모가 연간 2조원대에 이를 만큼 애완곤충으로 인기가 높다. 국내도 1990년대 후반부터 곤충동호회'충우(www.stagbeetles.com)' '나이스벅스(www.nicebugs.com)' 등을 중심으로 애완곤충 동호인이 꾸준히 늘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