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둘째 아이를 출산한 아내의 몸조리를 위해 시골에서 장모님이 올라와 계신다. 사위는 언제나 어려운 사람이라고 하지만 막내 사위라 그런지 처음 인사드릴 때부터 친아들 같이 편안하게 대해 주시는 분이다.며칠 전 저녁 식사 후 과일을 들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이었다. 장모님이 갑자기 아랫니를 여기저기 만지작거리더니 뭔가를 집어내시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마지막 남아 있던 아랫니였다. 젊을 때부터 치아가 안 좋아 고생을 하다 10여 년 전 틀니를 했는데 그나마 아래 틀니를 든든하게 받쳐 주던 마지막 이가 빠져버린 것이다.
장모님이 놀라 화장실로 급히 가시자 철 없는 세 살 난 딸아이도 바로 할머니를 뒤따라가 문 앞에 선다. 그런데 딸아이는 눈을 한번 크게 뜨면서 '이샹∼해' 하고 나직이 말했다. 틀니를 빼내자 쪽 오므라든 할머니의 입을 본 것 같다. 검지손가락을 입에 대며 어눌하게 말하는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 모두 한바탕 웃었지만 장모님의 조용한 웃음에서는 지난날의 회한과 아쉬움이 묻어났다.
장모님은 일찍 돌아가신 장인어른을 대신해 혼자서 땅을 일구시며 자식들을 키우셨다. 돈이 아까워 장에 나가시면 점심 때가 되어도 1,000원 하는 국수 한 그릇 안 사 드시고 겨울에는 한 달씩 생굴 장사를 다니시는 강인한 분이다. 아내가 '엄마 그건 절약이 아니에요. 엄마 몸 축나면 엄마만 손해야, 돈도 아무 소용 없다고요'라고 해도 조용히 웃으시며 '알았다'고만 하시는 분이다.
그런 분이 그날 이후로 힘이 없으시다. 자식들 다 키워 출가시키고 마지막 이도 빠졌으니 이제 세상을 살 만큼 산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더욱 안쓰러운 것은 사위와 이것 저것 이야기하며 즐겁게 식사하시던 분이 요즘은 통 나와 식사를 안 하려 하시는 것이다. 틀니가 잇몸과 따로 움직이니 제대로 씹을 수가 없고 헐거워진 틀니 밑으로 음식물이 끼기라도 하면 잇몸이 눌려 아프니 어색한 모습을 사위에게 보이기 싫은 것이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한사코 나중에 드시는 것이다.
오늘 저녁에는 내가 드시기 좋은 죽을 직접 쑤어드려야겠다. 참기름에 볶은 간 쇠고기와 잘게 썬 버섯을 넣고 푹 끓인 다음 마지막에 살짝 데친 시금치를 잘게 썰어 넣은 영양 만점의 쇠고기 시금치 죽을 말이다. '장모님 힘내세요'라는 말과 함께….
/장주현·서울 노원구 공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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