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초상화 제작비는 요즘 돈으로 400만원.시·서·화에 모두 빼어났던 18세기의 대표적 문인예술가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의 노년 초상화인 이명기(李命基) 작 '강세황칠십일세상'(사진)의 제작비를 추산한 결과이다.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서울서예박물관 주최로 7일 열리는 심포지엄 '표암과 18세기 조선의 문예동향'에서 주제 발표하는 '계추기사(癸秋記事)' 연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계추기사'는 표암의 셋째 아들 강 관이 1782년 계묘년 가을 집안에 일어난 일들을 일기체로 기록한 것으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여기엔 당시 표암이 초상화를 제작하게 된 정황 및 그림용 천 구입부터 보관용 궤 제작까지 20일간의 모든 공정과 소요 경비가 조목조목 기록돼있다. 이때 제작된 것이 현존 표암 초상화 10점 가운데 '70세자화상'과 더불어 대표작으로 꼽히는 '칠십일세상'이다.
이 교수는 "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에 어진(御眞·임금의 화상) 제작에 대한 기록이 있기는 하나 '계추기사'는 조선시대 문신 초상화 제작 과정이 소상히 밝혀진 첫 사례"라며 "특히 재료 구입 과정과 제작 비용까지 자세히 언급된 자료는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계추기사'에 따르면 '칠십일세상'은 표암이 정2품 이상 벼슬을 한 70세 이상 문신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기념으로 정조의 전교에 따라 제작됐으며, 이명기 등 당대 최고의 관청 장인들이 동원됐다. 또 초상화에 무명보다 다섯 배나 비싼 생명주를 사용하고, 족자를 꾸미는데 필요한 배접용 종이, 풀 등은 중국산 고급재료를 사용했다.
제작비는 이명기의 인건비 10냥을 포함해 대략 50냥. 쌀 20가마에 해당하는 액수로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약 400만원이다. 이 교수는 "정조의 전교(傳敎)에 의해 반관반민의 형식으로 제작해 사적으로 제작할 때보다 비용이 적게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추측했다. 서울서예박물관은 29일까지 표암의 초상과 글씨, 산수인물, 사군자, 서화평 등 180여 점의 작품과 자료를 전시하는 '18세기 예술의 큰 스승― 표암 강세황의 시·서·화·평' 전을 열고 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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