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눈과 귀에 호소하는 매체라면, 블록버스터 감독 강제규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적어도 이 명제에 가장 충실한 한국 영화로 평가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다.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총알 소리, 포탄이 터지며 흙이 튀는 모습, 한마디로 천식 발작이라도 일으킬 듯한 전쟁의 긴박함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보통 한국영화 다섯 편을 만들고도 남을 146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태극기 휘날리며’는 적어도 ‘때깔’에서만은 여태껏 보여주었던 한국영화의 수준을 여러 단계 도약시켰다. 전작 ‘쉬리’가 ‘할리우드 영화같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다면,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제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에 심하게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오늘 같으면 좋겠어요.” 진태(장동건)의 약혼녀 영신(이은주)은 물장구를 치며 노는 진태와 진석(원빈)을 보며 이런 말을 한다. 진태는 구두닦이를 하며 동생을 뒷바라지 하지만, 희망이 있다. 몸은 약하지만 늘 1등만 하는 동생이 내년이면 명문대에 들어갈 것을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은 1950년 6월 24일이었다.
전쟁이 터지고, 진태는 강제징집된 동생을 구하기 위해 입영열차 안으로 뛰어들면서 전쟁의 검은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낙동강 방어선에 진석과 함께 배치된 진태는 “훈장 타면 동생을 제대 시켜준다”는 중대장의 말을 믿고 전쟁의 적극적인 가담자가 된다.
진태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전쟁 논리에 설득 당한다. 그는 훈장에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자신을 즐기지만, 그 모두를 동생을 위한 것이라 자위한다. 하지만 “형, 이러지 마”라고 말하던 동생은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넌, 미친 새끼야”라고 울부짖는다.
형제의 전쟁은 전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고향에서는 영신이 반공청년단에게 죽임을 당하고, 잠시 외박을 나온 진태마저 부역자를 도왔다며 포로 수용소에 갇힌다. 세상은 끊임없이 형제를 속인 것이다. 빨갱이를 죽여 무공훈장을 탄 진태는 우익 손에 약혼녀를 잃었고, 심지어 동생 진석 조차 포로 틈에 끼어 타죽은 것으로 알게 된다.
6.25 직전부터 중공군 개입까지 낙동강 전투, 두밀령전투 등 4회에 걸친 대규모 전쟁장면이 비중있게 재연되고, 형제로 나온 두 미남 배우는 해맑은 미소가 광기에 점령당하는 과정을 꽤나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불량기마저 감도는 구두닦이 청년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반 미치광이가 된 진태, 즉 파동이 매우 심한 배역을 장동건은 무리없이 소화했다. 그간 몇 편의 블록버스터의 실패에서 그는 많은 것을 배운 듯하다.
하지만 형제애 때문에 형제가 갈라지고, 애국심이 국가에 등을 돌리게 만드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넘어 이 영화가 어떤 새로운 감동을 주고 있느냐는 데는 이견이 있을 만하다.
2시간 30분 길이의 영화는 날렵한 화면에 맞춰 적절하게 감정선을 건드리는 등 방법론에서 강세를 보이는 ‘웰메이드 전쟁영화’지만, ‘무엇’을 말하려는가 하는 것이 평이하다. 우리나라에서 ‘기록’을 세우는 영화가 웰메이드 여부보다 ‘실미도’처럼 얼마나 새로운 ‘감동’을 주느냐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이야기 구조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영화는 감독이 말하려는 바를 거의 완벽하게 전한 듯 보인다. 감독은 원빈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어. 아침에 일어나 형에게 나 진짜 이상한 꿈을 꿨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하고 기획된 ‘태극기…’는 한국전쟁이라는 소재와 극적구조에 익숙한 국내 관객보다는 오히려 일본, 동남아 등 해외 관객에게 더 큰 ‘사건’으로 어필할 것으로 보인다. 유일한 분단국이라는 한국의 역사와 현실, 이를 가공한 영화적 기술이 해외 관객에게는 ‘쉬리’ 이상의 반응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5일 개봉.
/박은주기자 jupe@hk.co.kr
한국 전쟁영화 계보
전쟁 영화는 두 가지 얼굴을 갖는다. 전쟁의 참혹함은 거대한 스펙터클을 통해 휴먼 드라마라는 엔터테인먼트로 태어난다. 할리우드에서 전쟁 블록버스터가 끊임없이 생산되는 이유다. 또 한편 이데올로기에 발목을 잡혀있는 전쟁 영화는 때로 이데올로기의 선전 도구가 된다.
한국의 전쟁 영화는 적어도 1980년대 이전까지는 대부분 ‘반공’이라는 명분에 영화적 순결을 바쳐야 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빨간 마후라’(1964),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1966) 등 60년대에 봇물처럼 쏟아진 전쟁 영화는 군사정권의 정책적 지원을 통해 전쟁의 광폭함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과대포장하는 수단이 됐다.
감독 이만희, 시나리오 작가 한우정이 호흡을 맞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대표적인 경우다. ‘7인의 여포로’(감독 이만희ㆍ1965)는 반공 전쟁영화인 동시에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된 아이러니컬한 사례다. 국군 간호장교를 호송하던 북한군 장교가 남한에 귀순한다는 전형적인 내용이었으나, 북한군의 인품이 긍정적으로 묘사됐다는 이유였다. 결국 작품을 수정해 ‘돌아온 여군’으로 개봉했으나, 한국 전쟁 영화가 이데올로기에 전적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연간 10여편씩 쏟아지던 전쟁 영화는 70년대에는 호스티스 영화, 에로 사극에 밀리며 생산량이 줄었다. 이후 간헐적으로 전쟁 영화가 출현했으나 주목 받지 못했다. 90년 ‘남부군’은 군사정권 하에서 억눌렸던 전쟁 영화의 욕망이 한꺼번에 분출된 경우다. 이데올로기의 상처로서의 전쟁을 그대로 드러내려 했던 첫 시도였다.
반면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데올로기의 부담을 털어버리고 스펙터클을 강조한 오락 전쟁영화의 첫 출발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전쟁에 휴머니즘을 녹여넣으며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출발과 해법이 아니라, 사람 이야기를 펼쳐놓는 것이다. 이런 휴먼스토리가 대자본, 하이테크와 만나서 결국 재미라는 새로운 전쟁 영화의 가치관을 추구하고 있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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