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한다. 생계의 고통, 말할 수 없는 고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마지막 결단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죽음으로 헤어날 수 없던 고난을 모두 털어버릴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2002년 인구 10만 명 당 자살자 28.94명(경찰청 통계).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자살률은 갈수록 우리가 얼마나 죽음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죽음에 대한 준비나 보호 장치가 얼마나 허술한지도 단적으로 드러낸다."살아 있을 동안 죽음을 준비해야 더욱 의미 있는 죽음,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습니다. 죽음을 준비해야 우리는 삶을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학제적으로 연구하는 생사학(生死學·Thanatology)을 10년 넘게 파고 든 한림대 인문학부 오진탁(46·철학) 교수가 최근 죽음 준비교육 활성화에 발벗고 나섰다.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를 주제로 지난달 '죽음, 삶이 존재하는 방식'(청림출판 발행)을 출간한 데 이어 28일에는 서울 YWCA 강당에서 '세계 각국의 죽음 준비교육 현황'을 주제로 국제 세미나를 연다. 오 교수는 이날 학계, 시민운동가 100여 명이 참여하는 '밝은 죽음을 준비하는 포럼' 발족식도 가질 예정이다.
"티베트 불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성 종교나 임사 체험자, 호스피스들이 한결같이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죽음으로 해결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가 지금 이 삶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죽음의 순간에도, 죽음 이후에도 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죽음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고려대에서 노장·불교철학을 공부한 오 교수는 1995년 춘천 한림대 강단에 서면서 본격으로 죽음 준비교육을 시작했다. '죽음의 철학적 접근' '인간의 삶과 죽음' 등 강좌를 개설해 자살이나 낙태의 잘못을 지적하고, 살아 있을 때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에 대비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강좌 이름에 끌려 수업에 들어왔던 학생들에게 죽음은 낯선 것이었다. 염세주의자가 아니라면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스무 살 남짓한 젊은이들에게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하지만 낙태수술 장면, 말기 암환자가 죽어가는 모습, 자살의 흔적 등 여러 사진 자료를 보면서 강의를 듣고, 유언장을 쓰거나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죽음에 대한 보고서를 써보면서 학생들은 '죽음'을 실감하게 된다. 10년 가까이 이어온 두 강의는 지금은 수강생이 300명을 헤아리는 인기 과목이 됐다.
'죽음, 삶이 존재하는 방식'은 강의에서 필독서로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안내서'(호스피스 체험담) '티베트의 지혜'(죽음을 보는 티베트인의 방식)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죽음에 대한 성찰)를 추천해온 오 교수가 직접 쓴 책이다. 자살을 비롯한 잘못된 죽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것은 물론 사람들이 죽음을 맞는 양태, 미국 독일 일본 등의 자살예방센터 운영이나 죽음 준비교육 실태를 소개한 것이다.
"자살은 따지고 보면 사회적 살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청소년이나 젊은 층의 충동적인 자살을 막기 위해 죽음 준비교육은 더욱 중요합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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