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한가지를 알려줄까? MBC '천생연분'(수·목 밤 9시55분)은 사실 호러 드라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에서 30대 이상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 보여주는 일상 속의 호러 드라마다. 물론 농담이지만,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그네들의 삶은 진짜 끔찍하다. 종희(황신혜)처럼 부잣집 딸에다 '컴퓨터 미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미모에, 성격도 시원시원한 매력적인 여성도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남자에게 사정없이 차인다. 그런 세상이니 평범한 여자야 오죽하겠는가. 석구(안재욱)가 유부남인걸 알면서도 접근하는 은비(오승현)의 말처럼, (적어도 한국에서는) 여자는 어린 게 좋다. 몹시 불쾌하지만, 그게 현실이다.끔찍한 현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름대로 성격도 좋고 잘 생긴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 해도, 그것은 문제의 끝이 아닌 시작이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착하긴 해도 다른 '어린 것'들에게 눈조차 주지 않는 완벽한 남자는 아니었고, 게다가 시댁에서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친정은 친정대로 가난한 남편을 구박해 속을 긁어놓는다.
물론 남자 입장에서 보는 여자도 만만치 않다. 임신을 핑계로 머리도 제대로 감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결혼 전에는 자신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와줄 듯이 큰 돈도 척척 빌려주던 사람이 이제는 돈 얘기만 하면 돈 때문에 결혼한 것 아니냐는 의심부터 한다. 종희의 이혼한 후배 안나(조미령)의 말대로, 트렌디 드라마의 환상은 끝나고 현실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천생연분'은 코믹하면서도 때로 섬뜩한 느낌을 준다. 자신의 캐릭터를 새롭게 발견한 안재욱과 황신혜의 연기, 유쾌한 상황 설정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에 드러나는 한국 여성의 삶이나, 결혼 생활의 모습은 현실적이기에 웃기면서도 공포스럽다. 석구와 종희, 그리고 안나와 종혁(권오중)의 닭살 돋는 로맨스는 석구와 종희의 결혼 생활과 이어지면서 재미와 함께 씁쓸함도 전달한다. 아무리 사랑이 깊어도, 그저 사랑하는 것과 두 사람이 일상을 공유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천생연분'은 이 복잡하고 사람 진을 다 빼는 결혼 생활의 해결책 역시 일상에서 찾는다. 결혼 생활의 행복은 거창한 화해나 사랑의 표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임신한 아내의 머리를 감겨주는 작은 행동의 실천이란 것이다. 결혼 생활이란 거대한 '드라마'가 아니라 그런 소박한 일상에서 드러나는 애정의 확인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를 만든 이재원 PD는 불륜을 일탈이 아닌 일상의 문제로 끌어들인 MBC '앞집여자'에서 조연출을 맡았다. 그는 '천생연분'에서 더욱 현실적인 캐릭터 위에, 부부 개개인의 문제만을 다루었던 '앞집여자'와 달리 종희와 석구의 일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가족의 문제까지 거론함으로써 이 시대 부부의 자화상을 좀더 세밀하게 그렸다.
여자나이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살 건가? '천생연분'은 잔치 이후의 삶, 작은 일에 웃고 울기를 반복하며 복닥거리는 우리의 삶을 냉정하지만 편안하게 담아내고 있다. 약간 씁쓸한 웃음을 머금고.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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