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리프킨은 저서 '생명권 정치학'에서 과거 몇 세기는 사유화와 상품화에 의해 지배된 세기였다고 말한다. '시장(market)'이라는 미다스의 손은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듦으로써 그것을 사고 팔고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변화시켰다.단 하나, 아직까지 미다스의 손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는 곳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공교육이다. 그래서 기업인들과 보수 경제학자들은 틈나는 대로 "자본주의 시대에 교육만 유독 사회주의를 신봉하고 있다"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이 보기에 공교육은 소위 자유기업정신과 경쟁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먹혀 들지 않는 최후의 요새이다.
최근 경제계가 총동원되어 평준화를 해체하라고 요구하고 있고 조·중·동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 언론들이 편파적으로 그 손을 들어주고 있다. 경제계 원로들부터, 재경부,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 전경련, 그리고 이제는 경제학자를 총장으로 두고 있는 서울대까지 그 흐름에 가세했다.
필자가 보기에 이들이 한목소리로 고교 평준화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교육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며, 공교육에서 '공(公)'자를 떼어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학교교육이 국가의 품을 떠나 시장의 품으로 상큼 안겨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로드맵(계획일정표) 가운데 평준화 폐지는 일종의 중간 정거장에 불과하다.
보수 경제학의 최대 목표는 국가의 개입을 배제하면서 더욱 많은 시장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공공 부문을 축소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공공 부문은 이미 형편없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만일 이미 존재하는 13조원 규모의 사교육 시장에 더하여 24조 규모의 학교교육이 통째로 시장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어 들어간다면, 총합 37조원 규모의 어마어마한 지식시장이 형성된다. 실물경제에서 죽을 쑤고 있는 시장주의 경제의 돌파구로서는 참으로 매력적인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지식기반경제를 향한 신천지 개척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혹시 평준화 폐지가 공교육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묘약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교육비를 낮출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말자.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감소는 서로 다른 종류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대 리포트가 보여준 발견점은 바로 '사교육 불패'의 신화이자, '시장화된 교육은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점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라.
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공교육도 시장화되면 스스로 변신과 증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공교육이 또 다른 교육시장으로서 여기에 가세할 경우, 이 두 가지 시장은 서로 시너지 접합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자기증식을 하게 될 것이고, 총체적 시장의 규모를 확대해 나가는 놀라운 번식력을 발휘하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시장화된 교육'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를 사교육 문제를 통해 똑똑히 보았다. 교육이 시장과 결합하면 예측하지 못한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이것은 마치 고기를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소에게 뼛가루를 먹이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 결과는 광우병이었다.
최근 안병영 교육 부총리는 선지원 후추첨 제도 및 교사평가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시도를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의 행보가 시장주의와 분명한 선긋기 아래 이루어졌으면 한다. 교육은 자본주의 로또(복권) 경제 안에 남아 있는 최후의 양심이고 비판적 지성이어야 한다. 마지막 남은 공동체의 보루를 무너뜨려서는 안된다.
나는 경제가 교육의 논리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니 경제를 책임진 분들도 제발 교육이 경제 논리로 움직일 수 있다고 우기지 말았으면 한다. 교육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를 위한 것이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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