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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전 옥천서 行不 7명 "혹시 실미도 희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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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전 옥천서 行不 7명 "혹시 실미도 희생자…"

입력
200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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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실미도'가 연일 관객동원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36년전 충북 옥천에서 한꺼번에 사라진 7명의 행방불명자 가족들이 이들이 실미도사건의 희생자일 가능성을 제기하며 국방부에 신원확인을 요청하고 나섰다.당시 행불자 가족인 정모(58)씨 등은 "1968년 3월 행방불명된 뒤 36년째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는 7명의 청년들이 실미도사건으로 희생됐을 공산이 크다"며 2일 국방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실미도 684부대'는 이들이 행방불명된 같은해 4월 창설됐다. 정씨는 "당시 21살이던 동생이 친구들과 함께 사라진 뒤 정보기관원이라는 사람이 한차례 신원조회를 나왔었다"며 "그 뒤 주변에서 '동생 일행이 특수부대에 입대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실미도 사건에서 자폭 직전 자신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시민에게 건넸다는 박기수는 함께 행방불명된 동생의 친구"라며 "동생 일행이 실미도에 끌려가 희생된 게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실미도 684부대'대원들이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군과 대치하다 자폭한 것은 1971년 8월23일. 이틀 뒤 한국일보는 6면 사회면에 684부대 대원이 탈취했던 버스에 탔다가 경상을 입고 살아난 승객 김모(당시25세)씨가 "(옆 자리에 있던 젊은이가) 나는 박기수다. 집은 충북 옥천인데, 19살때 집에서 나왔다. 나는 왼쪽다리에 관통상을 입어 30분후면 죽을 것이다. 우리 집주소가 있으니 편지를 보내 달라며 쪽지를 줬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박기수는 684부대의 실제 부대원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행불자들의 친구인 현모(56)씨도 "학교 졸업 후 방황하던 시절 사복차림에 권총을 찬 낯선 사람으로부터'특수부대에 들어가 정해진 임무만 수행하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었다"며 "고민 끝에 포기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곳에 입대한 걸로 안다"고 덧붙였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일단 내용의 진위 등을 담당부서에 검토한 후 민원 처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옥천=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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