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위대 병력은 24만 명으로 외형적 규모는 작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이지스함, F-15 전투기, E767 공중조기경보기 등 최첨단 병기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첨단 군사력의 하나이다. 특히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해·공군력과 정보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분명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일 동맹관계에서 비롯되는, 보다 정확하게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씌워진 굴레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자위대는 군사력을 해외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power projection capability)을 헌법상 제약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원치 않고 있다. 미국은 일본이 독자적인 군사노선을 취할 수 없도록 전수(專守) 방어적 성격의 제한적 군사력을 갖도록 작용해 왔다. 승전국 미국이 부과한 일본의 평화헌법은 미국의 의도를 잘 나타내준다. 결국 미일동맹은 일본의 군국화를 막는 병마개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일본의 가장 큰 변화는 군사력 보유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등 주요 야당들도 일정의 군사력을 보유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대포동미사일 실험 발사와 중국의 부상이 일본 내의 평화주의 분위기를 반전시켜 군사력의 필요성을 제고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미일 동맹의 재정의를 통해 군사력의 투사능력 확대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특히 9·11테러 이후 미국의 반테러 전쟁에의 동참과 PKO 등 국제협력활동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장거리 투사능력을 착실하게 확보해가고 있다.
일본은 PKO 및 재해구조활동을 명분으로 오스미급 8,900톤의 대형 수송선을 도입하고 있다. 이 수송선은 미국의 상륙강습함과 동일한 성격의 선체로서 대형헬기와 공기부양 상륙정을 적재해 18대의 90년식 전차와 1,000명의 병력을 강습 상륙시킬 수 있다. 현재 2척을 배치했고, 1척을 건조 중이다.
또 현재보다 5,000톤 이상 늘어난 1만3,500톤급의 대형 보급선을 건조하고 있다. 해상급유가 가능한 보급함의 대형화는 함대의 투사능력을 늘리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국제협력 임무 등을 이유로 기존의 C-1 수송기보다 3배의 항속거리와 2배의 병력 수송 능력을 갖춘 신형 수송기의 자체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1999년 안전보장회의에서는 공중급유기 도입을 결정한 바 있다. 일본은 신 중기 방위력 정비 기간 중 KC767형의 공중급유기 4기의 도입을 추진 중이며, 이것이 도입될 경우 일본 전폭기의 작전반경은 비약적으로 향상돼 한반도를 작전영역으로 둘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일본은 1만3,500톤급의 대형 헬리콥터 호위함 4척의 건조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 호위함은 헬기 공모로서는 지나치게 크며 항공모함을 의식한 선체로 판단된다.
장거리 투사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공중급유기, 오스미급 상륙강습함, 대형 보급함 그리고 장거리 수송기 등을 도입하는 것은 전수방위의 틀을 넘는 것으로 우려된다. 해외에서 강습 상륙작전이 가능한 양륙(揚陸)부대, 함대와 공격기를 장거리로 전개 가능하게 하는 대형 보급함과 공중 급유기의 정비는 주변사태법, 테러대책특별조치법, 이라크부흥특별조치법 등 법적 정비와 함께 자위대가 점점 해외파병이 가능한 부대로 전환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방위정책면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냉전이후 일본은 전면적 침공위협보다는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국제테러, 게릴라 침투 등의 위협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실효성있는 전력과 정책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판단이다.
얼마 전 한장의 신문 사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일장기가 선명한 자위대 장갑차와 수송차량, 소총을 든 자위대원이 이라크 사막에 발을 내디딘 장면이었다. 패전 이래 60년 가까이 유지돼온 일본의 금기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전후 처음으로 해외의 전투지역에 일본군이 등장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일본은 진짜 일본이 아니었다. 1945년 이래 일본은 패전의 굴레 속에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일본은 냉전을 강 건너 불 보듯이 하면서 소위 '평화국가'의 길을 유지해왔다. 한반도에서,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중국이 핵실험을 하고, 베트남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또 소련이 군사적 팽창을 해도 일본은 안보상의 위협이라는 인식없이 묵묵히 반세기 가까이 평화국가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냉전이 끝나자마자 일본은 지난 반세기간의 정체에서 벗어나 군사력을 활용할 수 있는 나라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일본은 더 이상 군국주의 국가가 아니다. 자유 민주주주의의 국가로 완전히 변모했다. 군사력에 대한 민간 통제 시스템도 잘 정비돼 있다. 그러나 일본 군국주의의 쓰라린 경험을 완전히 잊지 못하는 우리는 솔직히 일본의 급속한 변화를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주변국들은 반세기 이상 평화국가 일본에 익숙해 있다. 평화헌법과 전수방위는 일본이 다시는 군국주의로 가지 않는다는 안심과 설득의 재료였다.
이제 이 두 기준마저도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인 듯 하다. 일본은 자신의 급속한 군사적 역할 확대를 미일동맹이나 보통국가화라는 틀로 설명하려 하지만, 주변국들의 불안감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윤 덕 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45세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 석사, 일본 게이오대 대학원 박사 저서 "냉전이후의 미일관계" 등
■ 자위대 수준은 어느 정도
일본은 정말로 군사강국인가?
미국 러시아에 이은 세계 3위의 방위비 규모와 우수한 병력, 첨단 전투장비 등을 자랑하는 일본 자위대는 분명 국사강국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일본 사단법인 디펜스리서치가 펴낸 '안전보장에 관한 국제비교'(2002년판)에 따르면 일본의 방위예산은 456억 달러로 중국(420억 달러) 프랑스(350억 달러) 영국(346억 달러) 독일(280억 달러) 등을 앞지르고 있다. 한국(120억 달러)은 13위.
또 병력과 전투장비의 수효에서는 뒤쳐지지만, 질적인 면에서 세계 정상급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현역 자위대원수는 24만명으로 세계 22위 수준이다. 108만명의 북한(세계 4위)과 68만명의 한국(6위)은 물론 37만명의 대만(14위) 32만명의 시리아(15위)에도 뒤지는 숫자이다. 전투장비숫자도 육군장비는 세계 17위(전차 840대, 화포·미사일 880대, 공격용 헬기 90대), 공군장비는 19위(전투기 297대, 수송기 55대)에 머물고 있다. 해군장비는 중국에 이어 3위(함정 54척, 잠수함 16척)이다.
결국 양보다는 질인 셈이다. 고도의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일본 자위대원은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전투 장비도 이지스함, F15 요격전투기, F2 지원전투기, AWAC(조기경보기) 등 첨단을 달리며 주변국들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늘도 있다. 일본의 방위력은 이 같은 통상적인 전력면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비교대상에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항목을 집어넣으면 추락하고 마는 약점이 있다. 고도의 파괴력을 동반한 탄도 미사일 앞에서는 고전적인 통상 전력도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의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또한 엄청난 규모의 방위비도 예산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인건비와 비싼 일본산 무기 구입 비용을 고려하면 의미가 줄어든다는 지적도 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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